독자투고

 

김호열 주택관리사

최근 모 아파트에서 관리사무소장이 경리주임에게 승강기 안전관리자 선임을 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경리주임의 반응은 어땠을까? 황당했을 것이다. 그렇게 지시한 이유인 즉 최근 발효된 공동주택관리법에 이와 관련한 조항이 생겼기 때문이다. 확인해보면 시행령 별표1 ‘공동주택관리기구의 기술인력 및 장비기준’에서 비고에 ‘관리사무소장과 기술인력 간, 기술인력 상호 간에는 겸직할 수 없다’라고 돼있다.
이에 당황한 모 관리사무소 직원이 이 문제를 소방협회에 물어보고 전력기술인협회에 물어보고 관할관청에도 물어봤지만 아무도 이에 대해 아는 바가 없었다.
현장에서 혼선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는 일단 이 문구의 해석 및 적용과 관련해 법제처의 유권해석이 조속히 나와야 할 것으로 보인다.
겸직문제가 애초 논란의 대상이 된 것은 관리사무소장이 전기안전관리자를 겸직하는 것에 있었다 ‘된다. 안된다’의 공방 속에서 관할관청이나 대한주택관리사협회에서는 관리소장이 전기안전관리자를 겸직하지 못한다고 했고 현재는 모두 이렇게 알고 있는 상태다. 그런데 이와 관련해 법 조항이 모든 기술자격에 포괄적으로 적용하라고 한 것은 문제가 있다.
당장 궁금해지는 것은 경리주임이 승강기  안전관리자 선임을 할 수 있느냐다. 경리주임은 공동주택관리기구 조직에서 분명 기술직이 아니다. 경리주임에게 승강기 안전관리자 선임을 지시한 관리사무소장은 기술직 직원이 다른 법령에 의한 자격이 선임돼 있기 때문에 겸직금지 규제를 지키기 위한 방법으로 찾아낸 것이리라.
이것처럼 시행령 별표1 겸직금지 조항은 많은 모순을 내포하고 있다.
관련 법령의 법적 기술자격 선임을 모두 별개 직원이 하게 하라는 얘기인데 최소의 인원으로 운영되는 관리사무소에서 불가능한 얘기다.
안되면 경비원에게라도 선임시켜야 하지 않을까? 경비원이 용역업체 소속이라면 관리주체 소속이 아니기 때문에 선임이 불가하다.
공동주택 관리에 필요한 법적 기술자격이 10가지가 있다면 10명의 직원을 고용하든가, 일부는 직원을 고용하고 일부는 용역으로 처리해야 한다는 의미인데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관리주체는 전기안전관리자, 소방안전관리자, 승강기안전관리자, 저수조 관리자, 어린이놀이시설 안전관리자, 가스안전관리자, 공조냉동시설관리자, 일반 안전관리자, 총괄재난관리자 등 수많은 자격자가 필요하다.
규모가 큰 아파트는 소방안전과 관련해 300가구 이상 300가구마다 보조자를 한명씩 더 둬야 하고 전기안전과 관련해 전기용량 5,000㎾ 이상 5,000㎾마다 보조원을 더 둬야 한다.
여기서 특이한 총괄재난관리자는 무엇인가? 초고층 및 지하연계 복합건축물 재난관리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초고층 또는 지하연계 복합건축물에는 총괄재난관리자를 선임해야 한다. 겸직금지 조항을 엄격히 따른다면 관리사무소장은 총괄재난관리자로 지정될 수가 없다.
관리사무소장들에게 당장 걱정이 되는 것은 과태료다. 이 겸직금지 조항을 못 지키는 공동주택 관리주체가 필자가 아는 한, 전국 공동주택의 100%인데 이 과태료가 부과된다면 지자체는 엄청난 재정 수익(?)을 얻을 것이다.
그러니 겸직금지를 알게 된 우리 관리사무소 종사자들은 난리다. 탁상공론으로 만든 법이라느니, 한심한 발상이라느니, 현실과 동떨어진 행정의 극치라느니 다들 말들이 많다.
법의 취지가 고용확대와 실업감소라는 긍정적 측면이 있음은 이해가 되나 이렇게 현실 적용이 불가능하게 만들어놓고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가? 한 가지 다행으로 생각되는 것은 과태료 조항에 겸직금지 위반이란 내용은 명시돼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법의 잣대를 들이대면 과태료를 부과해도 사실 할 말이 없다.
결론적으로 시행령에 겸직금지라는 문구로 겸직불가를 일반화한 것은 문제가 있다.
법은 실천 가능하게 만들어져야 지켜질 수 있는 것이다.
‘겸직할 수 없다’라는 말은 ‘겸직할 수 없음을 원칙으로 한다.’라는 말로 내용이 완화돼야 한다.
최근 이에 관한 국토교통부 유권해석은 이렇다.
“관리사무소장은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로 그 직무를 수행해야 하므로 기술인력 간의 겸직은 금지되는 것이며, 입주자 등의 재산보호와 안전 확보를 위해 기술인력 상호 간의 겸직이 금지되는 것이 원칙입니다. 다만, 관계 법령에 따라 특정 자격증 취득이 아닌 일정시간 교육만 이수하면 기술인력으로 인정되는 경우에는 관리주체와 입대의의 판단에 따라 예외적으로 겸직이 가능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됩니다.”
이 내용은 법의 해석이 많이 완화돼 있고, 또한 겸직 판단 주체를 관리주체와 입대의에게 넘겨주고 있다. 그러나 뭔가 부족한 것은 사실이다.
현실적으로 2~3명 근무하는 소규모 공동주택에서 겸직금지조항을 어떻게 적용할 것인지 법 입안자는 실질적 실천가능한 안을 제시해야 한다.
이를 제시하지 못한다면 겸직금지 조항은 삭제함이 마땅하다.
현재 만들어진 공동주택관리법에는 ‘겸직금지’조항 외에도 현실과 동떨어진 내용이 분명 있다.
현장에서 적용할 수 없는 법을 만드는 것은 법 입안자가 현장을 모르기 때문이다. 분명 공동주택관리법은 계속 개정될 것이다.
올바른 법이 만들어질 수 있도록 현장 주택관리사들이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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