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기용 칼럼

 

 

류 기 용 명예회장

18세기 중엽, 서아프리카 감비아해안에서 조금 멀리 떨어진 만딩카 부족의 외진 산골, 쥬프레 마을.
어느 날 아침, 북을 만들 재료를 구하기 위해 숲으로 들어간 이 마을 소년 쿤타킨테는 피부색이 하얀 인간 백정들에 의해 짐승처럼 포획돼 말귀 알아듣는 가축, 말하는 도구로서의 노예라는 돌이킬 수 없는 형극(荊棘)의 길을 들어서게 된다.
이렇게 시작되는 알렉스 헤일리의 소설 ‘뿌리(Roots)’는 쿤타킨테와 7대에 걸친 그의 후손들이 겪었던 인생역정 즉 탄생, 좌절, 결혼, 죽음, 그리고 언제 팔려나가 가족 곁을 떠나게 될지 모르는 두려움, 공포, 불안 등등 끝없는 절망으로부터 마침내 자유를 얻기까지의 그 처절한 모든 과정을 적나라하게 묘사한 인간 승리의 대 서사시이다.
이 땅에서 주택관리사 제도가 시행되기 직전인 1987년에서 1989년까지의 3년 기간, 당시 시중에 나돌았던 선전용 팸플릿의 내용을 다시 한 번 상기(想起)해 본다.
“주택관리사란 관리전문회사, 용역 전문회사, 빌딩, 주택관리 사무소, 건설부산하, 주택공사, 건물관리공단, 공동주택(아파트, 임대주택) 등의 제반 경영 관리를 총괄, 지휘, 감독하는 전문가로서 외국에서는 ‘Housing Manager’라 부르고 우리나라에서는 ‘관리사무소장’이라 합니다”
“국가가 인정하는 국가공인 주택관리사는 대통령령으로서 유일하게 법정 강제규정 채용 의무화한 자격으로 사회적인 신분보장과 높은 직위로 수입이 보장됩니다” 이외에도 “모든 공동주택과 건물 및 시공건설업체에서도 채용 의무화” “개업과 취업도 할 수 있는 국내 유일의 확실한 자격증” “이 시대 최고의 자격증” “부와 명예를 동시에” 기타 등등이다.
1990년 3월 11일(일) 제1회 주택관리사(보) 시험 실시, 동년 4월 28일 제1회 합격자 발표, 이때까지만 해도 이것이 현대판 노예모집이었다는 사실을 어느 누구도 감히 예상치 못했었다. 어쨌거나 주위의 찬사와 격려 속에서 청운의 꿈을 펼치려 했던 자격증 소지자들은 실무경험이 없다는 죄(?), 자격증을 소지하고 있다는 죄(?) 때문에 특별한 몇몇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중간관리자, 전기실, 경비실, 기관실 등에 닥치는 대로 팔려나가기 시작했다. 그마저도 낙타가 바늘구멍 찾기여서 혈연, 지연, 학연 따위 ‘연줄 찾아 삼만리’로 그믐밤을 헤매야 했으며 이때 비록 벼룩의 간이지만 금품, 향응은 절대적인 필수요건이었다.
그렇다면 작금의 상황은 어떠한가.
이쯤에서 우리는 흑인들이 왜 그토록 오랜 세월을 노예라는 질곡(桎梏)에서 헤어나지 못했는가를 곱씹어 봐야 한다. 그들 아프리카 흑인들에게는 오로지 현실적인 생존만이 있었을 뿐 통일된 문자나 언어 그리고 전통문화나 고유의 역사 등등 이른바 문화 문명이 너무 낙후돼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끝내는 자유를 쟁취하고 잃어버린 낙원의 꿈을 되찾게 되는 가장 큰 이유는 참혹하리 만치 험난한 극한 상황 속에서도 노예의 굴레를 덮어씌운 선조들을 결코 원망하거나 탓하지 않고 자신들의 실체와 영혼을 지켜가며 끊임없이 노력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오늘날 이 땅의 주택관리사들은 자신들의 실체가 무엇인지, 지켜가야 할 소중한 영혼은 제대로 간직하고 있는지, 또한 앞서 간 이들의 자랑스러운 전통과 고난의 협회 역사, 그리고 이 나라 국가사회와 국민 앞에서 얼마나 겸허했는지 스스로를 차분하게 돌아 볼 일이다.
주택관리사! 그 뿌리는 ‘대한민국(大韓民國)’의 ‘법정공인(法定公人)’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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