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의 A아파트는 최근 4년간 관리사무소장이 5번 바뀌었다. 마지막 소장은
부임 3개월 만에 사직서를 냈다. 더 이상 근무하다가는 몸에 무슨 일이 생길 것 같았다. 입주민 B씨 때문이다.
관리소장과 관리직원, 경비원 등 현장의 말을 종합하면 B씨는 전형적인 아파트의 갑이자 관리사무소, 관할 지자체가 두려워하는 ‘악성민원인’이다.
“한 번 잘 못 보이면 그만둬야 한다”
얼마 전 아파트를 나온 소장은 이렇게 말했다.

 

“끊임없는 민원 제기로 다른 업무 볼 수 없을 지경”

지난해 말 관리소장이 부임 인사를 게시하자 B씨는 자격취득 시기, 나이, 경력 등 개인정보가 없는 것은 부임인사라 할 수 없다면서 수정해서 다시 게시하라고 지시했다. 이 요구에 소장이 응하지 않자 “감히 소장이 내 말을 안 듣느냐”며 시비를 걸기 시작했다.
B씨는 위탁관리회사 본부장에게 “소장이 무능하다”며 많게는 일주일에 30~40번 소장 교체를 요구했다. 전전임 소장이 근무하던 시기의 회계감사보고서와 아파트 결산을 대조해 관리비 비리가 의심되는 부분이 있다며 소명을 요구하기도 했다.
비리로 의심된다는 부분은 2014년과 2015년의 미처분이익잉여금이 회계보고서상 다르다는 것이었는데 소장이 공인회계사, 세무사에게 문의한 결과에 따르면 아파트 회계상의 요식행위에 의한 차이 또는 오기로 인한 것이지 횡령이나 금전 비리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는 답을 들었다.
소장이 주변의 도움을 받아 답변을 마련했으나 B씨는 자신에게 직접 전달하지 않고 우체통에 넣고 갔다며 수령을 거절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소장은 “질의에 대한 답변이 듣고 싶은 건지 사사건건 트집을 잡으려는 건지 혼란스러웠다”고 했다.
이외에도 B씨는 주말이나 심야에 소장에게 전화를 걸어 “관리소장에게 휴일이 어디 있느냐”고 윽박지르고 “능력이 안 되면 때려 치고 사라져라”라는 말을 하는 등 억지를 부렸다.
B씨의 요구는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A아파트 ‘2017년 민원접수 및 문서열람신청서’에는 지난달 초 기준 10여 건의 민원 내용을 모아놨는데 소장은 “여기 있는 모든 민원은 B씨가 제기한 것”이라고 했다. 1월 초순부터 불과 3개월 새 10건이 넘는 민원을 제기하며 자료, 해명을 요구한 탓에 일반적인 관리업무를 볼 수 없을 지경이라고 소장은 말했다.
그런데 B씨는 자료를 내놔라 관리비가 이상하다. 회계가 왜 이렇게 되나. 오래전 마무리된 입찰 관련 서류를 찾아오라 같은 민원에서 그치지 않았다.
몇 년 전 A아파트는 입주민들이 단지 내에 적치한 자전거로 인해 소방점검에서 지적당하자 긴급하게 입대의 의결을 거쳐 예비비로 자전거보관소 설치 공사를 했는데 이 사실을 안 B씨는 시청에 장기수선충당금이 아닌 예비비를 썼다며 행정처분을 내리라는 민원을 넣었다고 한다. 민원을 접수한 시는 아파트에 시정명령을 내렸고 아파트는 예비비를 다시 채워 넣는 등 시정명령을 이행했으나 B씨는 ‘법에 규정된 대로 반드시 과태료를 부과해야 한다’며 민원을 지속적으로 제기했고 시는 결국 과태료를 부과했다고 한다. 
이런 식으로 과거에 진행됐던 사안들을 하나씩 들추며 흠을 찾는 바람에 입주자대표회의를 비롯한 전임 관리소장들도 B씨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는다고 한다.
소장은 “동대표들 사이에서도 가급적 아파트에서 공사·용역 관련 입찰이나 행사 같은 건 하지 말자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라고 했다. 과태료 부과를 당하고 송사가 두려워 업무를 회피하고 스스로 위축돼 있다는 것이다.
지속적인 민원제기로 통상적인 업무를 수행할 수 없을 지경이 되자 소장은 올해 2월경 시청과 경찰에 도움을 요청하기도 했는데 당시 담당자는 오히려 “소장이 B씨 좀 그만 민원 넣게 해달라. 우리도 힘들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경찰도 “입주민이 아파트에 민원을 넣는 것을 경찰이 개입할 수 없다”며 “집주인이 민원을 제기하는 것을 제지할 수 있는 수단이 없다”는 답변을 들었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관리직원들은 B씨의 비위를 맞추는데 업무보다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동대표도 아닌 한 사람의 입주민이지만 마치 관리소장의 정당한 지시처럼 B씨의 요구에 따르고 있다고 한다. 끊임없는 의혹 제기, 끝이 나지 않는 민원, 고발, 지자체에 보내야 하는 답변 준비 등으로 관리직원들의 피로감은 극에 달했다. 입대의와 입주민들도 B씨와의 마찰이 두려워 점차 아파트 일에 멀어지는 사이 아파트는 점점 더 엉망이 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관리소장은 “B씨 개인에 대한 원망보다는 이런 행태가 근절돼야 한다고 생각해 제보를 결심했다”고 말했다. “끝나지 않는 민원, 의혹 제기로 인해 아파트 일을 볼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답변을 준비하느라 3년, 4년 전 서류를 뒤지고 관리직원들은 자기에게 맡겨진 업무를 할 시간이 없었다. 입주민의 알권리는 존중돼야 하지만 관리업무를 심각하게 방해하는 연쇄 민원과는 구분돼야 한다. 이런 일이 계속되면 오히려 피해를 입는 건 선량한 다른 입주민들이다”고 호소했다.
한편 사실 확인을 위해 A아파트 관리사무소를 통해 B씨에게 취재를 요청했지만 B씨는 “관리업무에 관해 민원을 다수 제기한 것은 사실이나 내가 그 민원인은 아니다”라며 “(사실관계를) 확인해 줄 수 없다”면서 취재를 거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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