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설

 

 

인간은 강한 존재일까? 인간의 의지는 얼마나 강할 수 있을까?
고난과 역경을 이겨낸 위인을 보면 인간은 못해낼 것이 없어 보인다. 불굴의 의지를 잃지만 않는다면 어떤 어려움도 헤쳐 나갈 수 있을 것 같은 희망을 얻는다.
하지만 일상 속의 보통사람들은 작은 장애물에도 걸려 넘어지고 주저앉아 ‘난 왜 이렇게 의지박약일까’를 되뇌며 자책한다. 체력이 달리는 데 정신력을 탓하기도 한다.
의지와 무관하게 환경도 큰 영향을 미친다. 어떤 집안에서 자랐고, 어떤 교육을 받았으며, 주변에 어떤 사람들이 있는지에 따라 훌륭한 인재로 성장하기도 하고, 있으나마나한 존재가 되기도 하며, 심하면 범죄자로 전락할 수도 있다.
직업 역시 마찬가지다. 대체로 법률가는 원칙적이고, 사업가는 임기응변에 능하다. 선생님은 책에 나오지 않는 건 말하지 않고, 예술가의 상상력은 현실을 넘나든다.
언론은 어떨까. 언론인들은 접하고 대하는 분야의 다양성에 걸맞게 복잡다단한 모습을 보여준다. 어떤 이는 날카로운 비판정신으로 강력한 저항성을 보여주기도 하고, 누구는 놀라울 정도로 고분고분한 순응력을 드러낸다. 상대와 상황에 따라 순식간에 변신해 당황스러울 때도 있다.
그래서 기본적으로 언론은 기회주의적이다. 음지보다는 양지에 가까이 가려 하고, 없는 사람보다 있는 사람과 어울리길 좋아한다. 약한 쪽보다 센 쪽에 붙는 게 체질이고, 까더라도 약한 쪽, 없는 쪽을 깐다. 강자를 깔 땐 기분 상하지 않을 만큼만 한다.
아파트 관리 관련 보도에도 언론의 하이에나 같은 속성이 그대로 드러난다. 국토부의 한 공직자는 “긍정적인 보도자료를 배포해도 기자들이 잘못된 걸 내놓으라 하고, 그런 것만 침소봉대해 곤혹스러울 때가 있다”고 말한다. 이야말로 언론의 입맛에 가장 잘 맞는 먹잇감이다. 권력과도 거리가 멀고, 자본과도 상관없으니 얼마나 만만한가. 게다가 진실을 알 리 없는 국민들은 정의로운 기자정신에 감동해 찬사와 박수를 아끼지 않는다. 그러니 계절마다 제철밥상 차리듯 관리비리 기사들이 쏟아져 나오는 것이다.
하지만 반골은 있는 법. 선생님 중에도 교과서 밖에서 진리를 찾는 사람이 있고, 공무원 중에도 복지부동을 혐오하는 사람이 있다. 가장 안정적이라는 의사와 가장 보수적이라는 법률가 중에도 소외된 사람을 돌보며 세상을 뒤엎어야 한다고 외치는 사람이 있다.
언론계에도 그런 반골들이 많았다. 달콤한 권력의 떡고물을 얻어먹는 대신 고문과 투옥을 무릅쓰고 독재의 부당함을 비판한 언론인들이 적지 않았다. 고 리영희 선생의 고독하지만 불같았던 투쟁, 그리고 그와 같은 길을 가며 그를 추종했던 많은 동료 후배 언론인들이 있었기에 현재의 자립적이고 자주적인 언론환경이 구축될 수 있었다. 오늘날 국민들이 보내는 언론에 대한 믿음과 희망은 약한 사람, 없는 사람의 편에 섰던 언론인들의 용기와 희생의 대가다.
새로운 정부가 들어섰다. 새 대통령과 정부에서 언론의 자유는 이전 정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풍족해질 것이다. 권부의 심기만 살피던 언론들도 더 이상 눈치 볼 게 없어졌다.
언론의 존재이유는 비판에 있다. 긍정적인 면보다 부정적인 면을 먼저 들여다보는 게 언론의 기본속성이다. 그러나 비판의 칼날이 어느 쪽을 향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판이해진다.
현실사회에서 자본은 강자고 노동은 약자다. 부자는 강자고 빈자는 약자다. 정권을 잃긴 했어도 아직 보수는 강자고 진보는 약자다.
강자는 소수고 약자는 다수지만, 권력에 아부하는 언론의 간교함에 힘 없는 다수는 늘 기만당하며 밀리고 소외돼 왔다. 해바라기 같은 언론 덕분에 부유한 소수는 흔들림 없이 자기를 강화시킬 수 있었다.
깊고 어두운 곳에 숨겨진 진실을 건져 올려 약자의 억울함을 폭로할 때 언론이 좋은 세상을 견인할 수 있다. 아파트관리 같은 쉬운 취재도 문제의 근원이 어디인지부터 파고 들어가야 진실을 알 수 있다.
국민의 힘으로 새로운 세상을 찾았다. 덕분에 권력의 재갈에서 벗어나긴 했으나 대부분의 언론들은 아직 자본으로부터는 전혀 자유롭지 못하다.
그런 그들의 펜끝이 과연 어느 쪽을 정조준할 것인지 벌써부터 궁금하다.

 

저작권자 © 한국아파트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