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설

 

 


“자치관리방식에선 입주자대표회의에, 위탁관리방식에서는 입대의뿐만 아니라 위탁관리회사의 감독까지 받아야 하는 입장, 신분보장이 되지 않는 약자, 관리사무소장은 ‘을’ 중의 ‘을’이다.”
지난 13일 열린 ‘공동주택 관리 전문성 제고 및 회계 문제점 개선을 위한 토론회’에서 첫 번째 기조발제자로 나선 김미란 변호사(법무법인 산하)의 말이다. <관련기사 1·4·5면>
대한민국 공동주택 관리 현실의 정곡을 찌른 지적이다.
지난 7월 경남 양산의 모 아파트 관리사무소장이 김해 집 근처에서 자살했다. 그 전달인 6월에도 울산지역 소장이 자신이 근무하는 단지의 옥상에서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됐다.
양산의 임대아파트에서 근무하던 소장은 층간소음과 옥상 통신중계기 철거 등을 요구하는 악성민원에 장기간 시달리며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아왔고, LH의 압박에도 중압감을 느껴온 것으로 알려졌다.
현실이 이럼에도 불구하고 실상을 알지 못하는 상당수의 국민들은 소장을 높은 지위에서 군림하는 자리로 여긴다. 일반 언론에서도 극히 일부의 사례를 제외하곤 대부분의 기사보도와 시사프로그램에 소장이 경비원이나 미화원들 위에서 갑질을 일삼는 존재로 그려지고 있다. 더구나 정비되지 않은 장기수선계획의 제반 규정들, 아파트 관리 현실과 동떨어진 회계규정들로 인해 부당한 오해를 받으며 부정·비리의 당사자로 묘사되기도 한다.
단지 직함에 ‘우두머리 장(長)’자가 붙어있다는 이유만으로 정반대의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일부에선 소장이란 이름에 걸맞게 합당한 대우와 지위를 인정해주기도 하지만, 아직 적지 않은 아파트에선 ‘종놈’이란 이미지가 더 진하게 각인돼 있는 것처럼 보인다.
지난 5일 서울 강서구에서 수십 명의 엄마 아빠들이 눈물을 흘리며 간청했다. 눈물뿐 아니라 무릎까지 꿇었다. 수많은 언론이 지켜보는 앞에서, 죄인처럼.
죄라면 장애가 있는 자식을 가졌다는 것. 그 아이들이 제대로 배울 수 있는 학교를 짓도록 해 달라는 공청회 현장이었다. 꼭 장애인이 아니어도 자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슬프고, 부끄럽고, 분노할 수밖에 없었던 장면. 그 한 장의 사진은 사람과 사람 사이를 타고 흐르며 삽시간에 온 국민의 가슴을 울렸다.
당혹스러웠다. 학교 하나 짓는 게 그토록 힘든 일이었는지 이제야 알게 됐고,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미안함과 자괴감을 느꼈다.
지극히 당연하다고 여기는 상식과 이기주의가 충돌하면 어떤 몰상식이 초래되는지 처절하고 신랄하게 보여준다. 특수학교가 들어서면 집값이 떨어진다는 공포(?)는 이미 개교한 여러 지역에서 기우에 불과함을 객관적 수치로 증명한다. 그럼에도 ‘나라면 어땠을까’란 가정 앞에선 마음이 한없이 무거워진다.
그러나 부끄러움과 분노에만 갇혀 있지 않고 행동에 나선 사람들이 있다. ‘강서구를 사랑하는 모임’이 결성돼 특수학교 설립지지 온라인 서명운동에 돌입한지 불과 며칠 만에 9만명을 돌파했다는 소식이다. 지지서명엔 자신이 사는 동까지 기재하도록 해 해당 지역 주민이 대거 동참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대한주택관리사협회 김해지부가 자살소장의 유가족을 돕기 위해 성금을 모았다. 그는 젊은 아내와 너무 어린 두 아이를 두고 먼저 떠났다. 작은 지부 차원의 운동임에도 소식이 전해지자 불과 며칠 만에 1,000만원이 넘는 정성이 모였다. 김영민 김해지부장은 “금액의 많고 적음을 떠나 전국 각지에서 보내왔다는 사실이 감동적”이라며 “주택관리사들이 다수지만, 먼 곳의 아파트 입주민과 입주자대표회의 그리고 관련 종사자들까지 동참해 줘 정말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해 왔다.
약자가 가진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래서 약자다. 약자의 유일한 힘은 연대에서 나온다.
장애인 학생들이 학교를 다니기 위해 많게는 하루에 세 시간 이상을 길에서 보내야 한다. 통학버스를 이용할 수 없는 아이들은 직장에 다니는 부모가 다리노릇도 해줘야 한다. 이를 외면하는 건 잔인한 차별이다.
강서구 주민들과 김해지부의 사연은 척박한 황무지에서 피어나는 한 송이 꽃을 보는 듯 가슴이 뜨거워진다.
연대는 약자가 가진 가장 강력한 무기. 연민은 인간이 느낄 수 있는 최고의 감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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