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설

 

 

 

최근 2~3년 동안 여름이면 아파트에 감동의 물결이 출렁거렸다. 예전 같으면 서민들은 엄두도 못 낼 에어컨을 경비실에 달아주자는 운동이 일었다.
가장 고령대에 속하며, 24시간을 꼬박 단지 안에 갇혀서 더럽고, 귀찮고, 골치 아픈 일을 맞닥뜨려야 하는 사람들에 대한 입주민의 각성이 시작된 것이다. 함께 3D업종으로 꼽히는 미화원들에 대한 관심도 나날이 증대하고 있다. 대한민국 아파트 역사 반세기가 지나면서 종사자에 대한 공동체 의식의 싹이 드디어 발아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제 겨우 움트던 소중한 싹에 불안한 조짐이 보인다. 내년도 최저임금 7,530원, 올해 대비 16.4% 는다. 식민지배와 6·25의 폐허를 딛고 오늘날의 경제부흥을 이룩한 원동력이 노동자들의 저임금에 기반한 것이라면 그동안의 착취에 대한 보상이 필요한 것은 틀림없다. 또 최근 경기침체를 벗어나기 위해 ‘소득주도 성장론’이 주목받고 있기도 하다.
문제는 최저임금 대폭 인상이 중소기업과 자영업자에게 큰 부담을 준다는 데 있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지난해 대한민국 1,918만개의 일자리 중 중소기업의 비중이 80.8%였다. 이들 상당수 노동자가 최저임금 인상의 혜택을 보겠지만, 회사 입장에선 대기업의 납품단가 후려치기에 당하고, 최저임금 인상에 비명 지른다는 심정을 이해할 만하다.
이 같은 현상이 아파트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격일제 24시간 노동자인 경비원의 경우 내년이면 어림잡아 최대 300만원의 급여를 받을 수 있다. 휴게시간에도 초소를 지키는 경우엔 에누리할 근거도 없다.
이로 인해 내년도 임금인상안을 둘러싸고 각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와 관리사무소가 골머리를 썩고 있다. 전후사정에 어두운 일부 입주민들이 내년도 관리비 내역서를 받는 순간 반발할 게 뻔하기 때문이다.
최대 수혜자인 경비원이라고 해서 마냥 웃고 있을 수만도 없다. 최저임금 100% 적용을 받으면서 대량 감원의 후폭풍을 맞았던 2015년의 악몽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관리사무소 입장에선 소장과 과장, 기사와 경리, 그리고 경비원과 미화원 등의 급여체계가 헝클어지는 것에 대한 부담도 간과할 수 없다. 관리사무소장의 업무책임과 노동의 질을 감안하면 비례해서 오르는 게 마땅한데도 차마 입을 떼지 못하는 실정이다.
그렇다면 이젠 정말 입주민의 인식이 바뀌어야 할 때다. 관리비 인상이 싫어서 무턱대고 직원을 줄이거나 편법을 동원하면 관리의 질은 그만큼 떨어질 수밖에 없다. 진짜 문제는 이런 부실이 쌓이고 쌓이다 보면 큰 사고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이다. 더구나 최저임금 인상의 과실이 공동주택 관리종사자에게만 돌아가는 것도 아니다. 입주민들도 회사원이라면 그 열매를 함께 맛보게 돼 있다. 사업주거나 자영업자라면 당장은 고통받겠지만, 그 돈들이 외국으로 빠져나가지 않는 한 대한민국에서 돌고 돌아 소비되고, 구매력이 상승해 결과적으로 모두에게 혜택이 돌아갈 것이다.
아무나 하는 경비원, 미화원이라고 해서 싼 값에 마구 부려먹어도 된다는 구시대적 사고방식은 버려야 한다. 그들도 다른 아파트에선 당당한 입주민이고, 한 가정을 책임지는 가장이고, 아버지이자 어머니다.
무엇보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그들도 고용주에게 노동력을 제공하는 직장인이란 사실이다. 내가 다니는 회사의 임금 인상에 환호하면, 내가 사는 아파트의 관리비 인상에도 흔쾌하자.
내 지갑을 닫으면 남의 지갑도 닫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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