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의 지리학자인 이중환은 일찍이 ‘택리지’에서 우리나라의 많은 내포 땅 중에서 서산, 당진, 아산, 홍성, 예산 등 가야산 앞뒤의 열 고을이 가장 살기 좋다고 했다. 여기서 내포(內浦)는 ‘안개’란 뜻으로 바닷물이 강을 통해 육지 깊숙이 들어온 곳을 말한다. 예산은 내포 땅 중에서도 풍치가 아름답기로 유명한 고장이다. 여기에 예향의 멋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어 문화유산 답사지로도 각광받고 있다.   

예산은 요즘 가을빛이 완연하다. 그 기운을 안고 신암면 용궁리로 간다. 추사 김정희 선생의 고택이 있는 곳이다. ‘추사체’와 ‘세한도’라는 독특한 경지를 이뤄낸 김정희(1786~1856년) 선생은 예산을 예산답게 하는 큰 인물이다. 
추사 고택은 지난 1977년에 복원한 20여 칸짜리 전통 한옥이다. 조선 후기의 실학자이자 서예가였던 추사 김정희는 한 세상을 예술과 학문 탐구에 몰두했던 분으로 선생이 남긴 뛰어난 업적은 오늘날 지식인들의 귀감이 되고 있다.  
추사 고택은 대문채, 사랑채, 안채, 그리고 추사 선생의 영정이 모셔져 있는 사당채로 구성돼 있다. 고택 앞으로는 탁 트인 예당평야가 펼쳐져 있고 뒤로는 소나무 우거진 야트막한 동산이 있다. 추사의 글씨처럼 단정하고 소박한 고택은 예스러움이 물씬 풍긴다. 

 

▲ 추사 고택에 걸린 김정희의 유려한 필체
▲ 추사 고택의 안채

곳곳에서 느껴지는 추사의 울림 

안마당으로 들어서면 정면에 넓은 대청이 있고 오른쪽에는 안방과 부엌이, 왼쪽에는 안사랑과 작은 부엌이 마주하고 있다. 추사 고택은 영조의 사위며 추사의 증조부인 김한신(1720~1758)이 1700년대 중반에 건립한 53칸 규모의 대갓집으로 추사가 한 시절을 보낸 곳이다. 
추사는 1786년에 이곳에서 김노경의 아들로 태어나 병조참판과 성균관 대사성을 지냈으며 당쟁에 휩쓸려 제주도와 함경도 북청에서 13여 년 동안 유배생활을 하기도 했다. 빛바랜 고택 기둥 여기저기에 걸려 있는 주련(柱聯)이 마음에 잔잔한 울림을 준다. 사랑채 큰방에는 선생의 대표작인 ‘세한도’ 복제본이 걸려 있어 추사의 그림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고택 입구 추사기념관에서 추사 선생의 묵향 그윽한 체취를 흠뻑 느낄 수 있다. 고택 옆 동산에는 추사의 고조, 증조할아버지와 선생의 묘소가 자리하고 있다. 묘소 주위로는 키가 껑충한 낙락장송들이 도열해 있다. 
고택 뒷산인 앵무봉 너머에는 추사가 젊었을 때 공부하며 지냈던 화암사란 작은 절이 있다. 화암사 뒤편 바위에는 추사 선생의 글씨인 ‘시경(詩境)’과 ‘천축고선생댁(天竺古先生宅)’이 새겨져 있다. ‘천축’은 부처님이 계시는 곳을 말하며, ‘고선생’이란 부처를 옛 선생이라 이른 말이다. 추사의 재치가 어우러진 재미있는 표현이라 하겠다. 추사 고택에서 걸어서 30분쯤 걸린다. 

▲ 천연기념물인 백송

추사 고택 오른편으로 조금 돌아 나가면 ‘화순옹주 정려문’(和順翁主 旌閭門)이 나온다. 정려문은 추사 김정희 선생의 증조모인 화순옹주(영조의 차녀)의 정절(貞節)을 기리고자 정조가 내린 열녀문(烈女門)이다. 화순옹주는 조선왕조의 왕실에서 나온 유일한 열녀라고 한다. 
또한 추사 고택에서 길을 따라 북쪽으로 600m쯤 올라가면 천연기념물 제106호인 ‘백송’이 서 있다. 백송은 중국 북부지방이 원산지로 우리나라에는 몇 그루 없는 희귀한 수종이다. 이 백송은 추사 선생이 사신으로 청나라 연경에 갔을 때 종자를 갖고 와 심은 것으로 원래는 세 줄기로 자라다가 서쪽과 중앙의 두 줄기는 부러져 없어지고 동쪽의 줄기만이 남아 자라고 있다. 이 소나무의 수령은 약 200년이며 높이는 약 10m다.  

 

▲ 철새의 보금자리 예당저수지

철새들이 날아드는 예당저수지

추사 고택에서 무한천을 따라 예당저수지로 간다. 예당호는 한 폭의 거대한 수묵화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저수지답게 광활하게 펼쳐진 호수를 바라보고 있으면 ‘아’ 하는 감탄사가 절로 새 나온다. 간간이 낚싯줄을 드리운 채 세월을 낚고 있는 강태공도 보인다. 
11월부터 이곳에는 다양한 겨울철새들이 날아든다. 호숫가에 산책로, 주차장, 매점, 잔디광장, 조각공원, 전망대 등이 마련돼 있다. 봉수산 아래 예당호를 앞에 둔 대흥면 일대는 최근 들어 슬로시티로 각광받고 있다. ‘느린 꼬부랑길’로 명명된 마을길은 대흥향교, 대흥동헌 등 고풍스런 건물을 지나 호수를 보며 봉수산 숲길로 이어진다. 
옛이야기길, 느림길, 사랑길로 나눠진 느린 꼬부랑길은 1시간에서 1시간 30분 코스로 가족들과 함께 걷기 좋다. 길 중턱에는 예당호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봉수산 자연휴양림이 있다. 한편 슬로시티 기점인 대흥면 상중리는 옛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려 진한 형제애를 보여줬던 ‘의좋은 형제’ 이야기의 실제 무대기도 하다. 
대흥 슬로시티 마을 인근에 들어선 예산 황새공원은 자연환경 파괴로 거의 사라진 황새(천연기념물 제199호)의 성공적인 복원과 야생 복귀를 위해 만든 생태교육 공간이다. 황새공원 내 황새문화관에서 황새의 생태와 특성 등을 공부할 수 있으며 황새를 관찰할 수 있는 관람데크와 황새 종이모형 만들기, 황새 퍼즐 맞추기, 칠교놀이, 아이클레이 목걸이 만들기, 팔찌 만들기, 오카리나  만들기 등을 해볼 수 있는 체험학습실도 마련돼 있다. 

 

▲ 수덕사 경내

1,5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덕숭산 수덕사 

덕산면 사천리, 덕숭산 자락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고찰, 수덕사가 자리 잡고 있다. 수덕사의 대웅전(국보 제49호)은 안동 봉정사 극락보전,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에 이어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이다. 
대웅전의 맞배지붕과 수려한 곡선을 뽐내는 처마는 아름답기 그지없다. 대웅전은 못을 전혀 쓰지 않고 지었다. 여느 절에서 볼 수 있는 화려한 단청은 없지만 단정하게 배치된 가람은 힘차고 웅장하다. 
절에 딸린 견성암은 우리나라 최대의 비구니 암자다. 수덕사 일주문 옆에는 고암(顧菴) 이응로(1904~1989) 화백의 작품과 2008년 입적한 수덕사 방장 원담 스님의 그림을 전시한 선(禪)미술관이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불교 전문 미술관으로 초대전을 통해 다양한 작가들의 작품도 전시하고 있다. 
수덕사에선 참 나를 찾고 잠시 머리를 식힐 수 있는 템플스테이를 연중 진행한다. 1박 2일로 짜인 사찰 체험프로그램으로 자연을 느끼고 보며 삶을 재충전하는 기회로 활용하면 좋다. (수덕사 041-330-7700) 
매헌 윤봉길 의사도 예산이 배출한 큰 인물이다. 윤 의사의 체취를 느껴볼 수 있는 윤봉길 의사 사적지에는 생가(광현당)와 기념관, 영정을 모신 사당(충의사)이 들어서 있다. ‘한국을 건져내는 집’이란 당호가 붙어 있는 저한당(沮韓堂)은 윤봉길이 성장한 집이다. 
윤봉길(1908~1932)의 본명은 우의(禹儀), 봉길(奉吉)은 그의 별명이다. 매헌(梅軒)은 뒤에 지은 아호다. 저한당 옆에는 윤 의사가 농촌 계몽활동을 했던 부흥원이 자리하고 있다. 윤 의사 기념관에는 상해 흥구공원에서 의거할 때 지니고 있던 소지품과 그가 생전에 쓰던 유품과 서책, 글씨들이 전시돼 있다. 그가 20세에 야학을 꾸릴 때 교재로 펴낸 ‘농민독본’도 볼 수 있다. 윤봉길 선생의 유품은 그 역사적 의미와 가치를 인정받아 모두 13종 68점이 보물 제568호로 지정됐다. 사당 옆에 들어선 보부상유물전시관에도 들러보자. 예산, 덕산에서 활동하던 보부상들의 유품과 각종 전적, 공문 등을 전시하고 있다.

김 초 록  여행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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