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기 택 관리사무소장
서울 강남구 거평프리젠아파트

벚꽃이 피던 어느 해 관리사무소장 모집공고를 보고 지원해 입주자대표회의 회장의 면접을 마쳤다. 
위탁회사가 따로 있는데 이것저것 떼는 것이 있다는 말을 들으니 제 딴에는 급여를 온전히 보전해 주려는 의도에서 직접 채용한 것 같다. 그 후 회장이 바뀌어 용역비용이 인원에 비해 과하다는 판단에 따라 위탁관리를 해지하고 자치관리를 하게 됐다. 
마침 재직기간 1년이 안 된 소장과 미화원은 퇴직금을 못 받았지만 자치관리로 전환해서 직원 소속이 변경됐더라도 못 받은 퇴직금은 아파트 입대의에서 줘야 한다는 노동부의 유권해석에 따라 나중에 소급해서 받았다. 
입대의에서도 두 명의 퇴직금을 못 받아 낸 것을 아쉬워했고 본인도 위탁사의 부당한 처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맴돌아 급기야 미지급 퇴직금 반환소송을 검토하게 됐다. 미지급 퇴직금은 입대의에 반환해야 한다는 판례가 한국아파트신문에 게재됐고 입대의 방침도 있어서 망설임 없이 팔을 걷어붙였다. 
우선 소송으로 가기 전에 내용증명을 보냈으나 퇴직금지급 시효 3년이 지나서 해당 사항 없다는 간단한 답이 왔다. 이미 본인도 지레짐작으로 포기하려 했던 것을 우연한 기회에 구청 변호사와 상담해 부당이득금에 해당하고 시효 또한 10년이란 사실을 알게 됐는데 상대방은 성의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패소할 경우도 생각해서 변상할 소송비용도 물어보니 ‘변호사보수의 소송비용 산입에 관한 규칙’에 따라 2,000만원까지의 소송금액은 산입비율이 10%여서 변호사비용 등을 합해도 많아야 30만원 이하란다. 비록 위탁관리회사와의 계약서 조항에 미지급 퇴직금은 입대의에 반환해야 한다는 문구가 없더라도 대법원 판례를 근거로 부당이득금 반환 청구소송 이유서를 작성했다. 
그러나 1심은 보기 좋게 패하고 말았다. 잘 생각해 보니 도급계약이 아니고 위탁계약이라는 근거에 맞는 여러 가지 증거와 논리로 주장해야 하는데 오직 용역사의 일반관리비, 기업이윤 등이 아파트 소수 인원에 비해 터무니없이 과했다는 데 초점을 맞춘 것이 패소의 원인이었다. 그래서 이론을 재정립해 항소했고, 인지대는 1심의 1.5배 금액인 1만3,300원과 송달료 등 약 12만원의 비용이 들었다. 요약 쟁점정리서면 양식에 조정(화해) 사항이 있어 조정을 선택했더니 금방 조정기일이 잡혔다. 그러나 1심에서 이긴 상대방이 화해할 리 만무하고 또 재판 판결이 중요하다고 해 무산됐다. 2심 답변서도 자문 변호사가 작성했는지 논리 정연한 게 한눈에 들어온다. 다시 구청 변호사를 찾으니 법리 해석은 판사의 몫이고 당사자는 주장하는 이유에 걸맞은 증거를 많이 제출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보통 아파트 위탁관리는 주택관리업자가 도맡고 청소와 미화는 다른 용역업체가 입찰을 하는데 계약서를 살펴보니 두루뭉술하게 도급계약이라는 제목으로 한꺼번에 묶어 놓은 것 같았다. 용역회사도 위탁관리업체와 이름이 같아서 자회사인 것 같았고 용역료도 소장과 미화원을 2개사에 따로따로 송금했고, 그러한 6년 전 은행이체확인서를 발급받아 입증 자료로 제출했다. 
아울러 비록 도급계약이라는 문구가 있어도 계약의 법적 성질은 용어보다는 계약 내용의 실질에 따라 위탁계약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사건 접수 약 5개월 후인 11월 12일에 원고 패소부분을 취소하고 미지급 퇴직금을 판결일까지는 5%, 그 다음날부터는 15%의 지연손해금을 지급하라는 판결이 나왔다. 1심을 뒤집기는 참 어렵다는 말을 들은 터라 자신은 못했지만 구청 변호사의 조언에 따라 여러 가지 입증자료를 제출한 게 그래도 주효한 것 같아서 내심 기쁘고 회장도 화해를 거절당한 기억이 있어서 그런지 희색이 만면했다. 
현재 위탁관리회사는 대법원에 상고를 제기했다. 따라서 아직 법원의 최종 결론이 내려진 것은 아니지만 기본적으로 원고와 피고의 법률관계는 민법상 위임관계고 퇴직적립금은 선급비용으로서 피고에게 귀속시킨다는 약정이 없는 이상 미지급퇴직금은 원고에게 반환해야 한다는 판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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