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란드룩Landruk 1,565m 롯지에서 바라보는 안나푸르나 남봉7,219m(좌)과 히운출리6,441m(우)a

히말라야에서 시간은 계곡을 맴돌고 길은 시간의 미로에 갇혀 있다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여름. 생활에 바빠 나를 돌아보지 못한 시간들에 대한 보상이라도 하듯 어디론가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히말라야를 떠올렸다. 아는 사람과의 동반보다는 나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했다. 가을이 가고 잠깐의 한적한 시간을 택해 짐을 꾸렸다. 오랫동안 내버려 뒀던 침낭, 매트, 스틱 등을 거실 한편에 던져 둔 카고백에 생각 날 때마다 하나씩 담았다. 워밍업을 위해 북한산에 올랐다. 산에 안 다닌 지도 이미 수년이나 돼 저질체력이 돼있어 내 몸에 대한 위로보다는 낯선 땅에서 모르는 사람들에게 피해가 되면 어쩔까 하는 민망함만이 앞섰다. 그리고 안나푸르나 트레킹 여정에 올랐다. 

인천공항에서 오후에 출발해 7시간을 날아 도착한 네팔 카트만두는 한국보다 3시간여 늦은 시간 탓에 아직 초저녁이었다. 히말라야의 신선한 공기를 생각했던 것은 내 생각일 뿐. 분지에 위치한 카트만두는 뿌연 스모그와 매캐한 먼지 냄새로 가득하다. 다음날 아침 트레킹의 시작점인 포카라를 가기 위해 안개가 걷히기를 기다려 작은 비행기로 출발했다. 카트만두에서 포카라까지 가는 1시간여 동안, 비행기의 창문으로 보이는 줄지어 서있는 히말라야 설산의 산맥들. 세계에서 8번째 높은 마나슬루(8,163m)봉 7부 능선을 스치며 지나갈 때는 히말라야의 산들이 얼마나 높고 거대한지 그제야 실감이 났다. 도착한 포카라는 따뜻한 봄기운의 청명한 날씨와 푸른 나무들과 꽃들이 경직 돼있는 내 몸을 풀어준다. 멀리 마차푸차레의 뾰족한 봉우리를 좌우로 안나푸르나의 설봉들이 눈앞에 아득히 보이며 다가올 고행의 시간과 무언가의 기대감으로 생각이 교차한다.  
급경사인 산을 내려와 플래시 불빛에 의지해 산길을 걸었다. 어두운 하늘에 구름조각처럼 떠있는 하얀 봉우리로 지루한 산길을 위안하며 란두룩(1560m)에 도착했다. 첫날부터 산을 하나 넘은 강행군으로 온기라고는 느낄 수 없는 히말라야의 스산한 로지(임시로 거처하는 오두막집)에서 잠에 빠졌다. 그나마 포근한 침낭 속의 온기를 느끼며 아침에 눈을 떴을 때는 햇살에 하얗게 빛나는 안나푸르나 남봉(7,219m)과 히운출리(6,441m)의 설산이 어제의 우려를 뒤로하고 하룻밤 사이 새로운 기대를 안겨 준다. 다랭이 밭을 지나 내리막길을 지나 활엽수림으로 접어든다. 히말라야 계곡을 휘어 도는 물소리를 따라서 로지의 개 한 마리도 앞서거니 뒤서거니 따라온다. 히말라야의 로지에서 키우는 개들은 자기 숙소에서 묵은 손님들을 쫒아오며 다음 로지에 사는 개에게 확실하게 손님들을 인계하고 돌아간다는 재미있는 사실들도 발견한다. 
까마득한 계곡에 걸쳐있는 출렁다리를 지나 지누단다의 급경사인 오르막을 오르면 푼힐전망대로 가는 삼거리와 만나는 촘롱마을(2,170m)이다. 촘롱의 로지에는 앵초꽃들이 돌담에 피어있고 빵집과 커피점들이 있어 제법 큰 마을을 이루고 있다. 커피 한잔으로 휴식하며 바라보니 두 번째 숙박할 로지인 시누와(2,360m)가 바로 눈앞이다. 그러나 눈으로 바라보면 30분 내로 갈 것 같은 그곳. 그러나 감자꽃이 피어 있는 돌담길을 따라서 한참이나 내려갔다가 다시 오르막으로 오르는 길로 힘겹게 걷는 길일 줄이야…. 히말라야에서는 눈으로 거리 짐작이 쉽지 않다. 

 

그래 마음껏 걸어 보는 거야 Annapurna Trekking

구름이 몰려오고 청명한 하늘이 갑자기 어두워지며 비를 뿌린다. 오늘의 마지막 여정이라는 희망으로 겨우 도착한 로지에서 우유에 차를 섞은 따끈한 찌아 한잔에 힘들었던 시간을 녹여 낸다. 별들이 떴다. 건너편 산비탈에는 촘롱마을의 불빛들이 깜빡인다. 
다음날은 밤부-도반-히말라야 마을을 거쳐 데우랄리(3,230m)까지 가는 여정으로 아침 일찍 출발해 11시간이나 지나 어두운 저녁에야 도착했다. 고도에 적응하느라 천천히 걸었지만 소화가 되질 않고 속이 끓어 오르며 복부가 팽창하는 듯 고산 증세에 힘이 들었던 일정이었다. 그나마 푸른 대나무 숲과 눈 속에 가득 피어있는 원시림 숲길의 앵초꽃, 눈이 폴폴 내리던 산길 높은 나무 위에서 열매를 먹고 있는 설인 같은 히말라야 원숭이 가족들이 없었더라면 그 길은 더 힘든 고행의 길이 됐을 듯하다. 그날은 마차푸차레의 힘찬 고봉 위로 구름이 자주 머물렀다. 가끔 멀리서 눈사태 일어나는 소리가 우리들을 점점 깊숙한 골짜기로 불러들인다. 밤에 자다가 깨 밖으로 나왔다. 플래시 불빛에도 주변이 새까만 어둠으로 막아선다. 완전히 고개를 젖혀서 올려다보니 하늘은 밝은데 가까이에 오리온 별자리의 네 개의 별이 반짝이며 그 안의 삼태성은 설산의 봉우리에 걸려있다. 달빛이 뒤편 봉우리에 가려 암벽에 짙고 검은 거대한 삼각형 모양의 그림자를 만들어 하늘을 찌를 듯 성큼 내 앞으로 달려 온 것이다. 기괴한 모양새에 눌려 한참을 바라보는데 협곡으로 보이는 하늘은 한 뼘이다. 

 

히말라야 계곡에서 사흘째를 맞았다.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가 있는 ABC(Annapurna Base Ca mp)까지는 8㎞ 정도로 얼마 안 되는 거리지만 이제부터는 900m를 올리는 고도와의 싸움이 시작된다. 협곡의 길을 따라서 히말라야 설산의 눈들이 녹아 작은 폭포들을 이루며 계곡으로 떨어진다. 

▲ MBC(Machapuchare Base Camp 3700m) / 구름과 마차푸차레(6,993m)

마차푸차레 베이스캠프인 MBC(Machapuchare Base Camp 3,700m)에 도착해 늦은 점심을 먹었다. 마차푸차레는 두 개로 갈라져 있는 봉우리의 모습이 물고기의 꼬리 모양을 하고 있다고 해 네팔어로는 ‘물고기의 꼬리’라는 뜻을 갖고 있으며, 알프스의 마터호른과 에베레스트산(Mt. Everest)의 길목에 있는 아마다블람과 함께 세계 3대 미봉(美峰)으로 꼽힌다. 종교가 거의 힌두교인 네팔인들이 신성시하는 산으로 등반이 금지돼 히말라야 유일의 미등정 산으로도 유명하다. 마차푸차레(6,993m) 바로 아래 로지에서는 햇살이 따갑게 내리쬔다. 히운출리와 마차푸차레 경사면의 눈들이 지척이고 안나푸르나 남봉, 안나푸르나1봉(8,091m)과 강가푸르나(7,455m), 안나푸르나3봉(7,555 m)의 설봉들이 둘러서 있어 마치 돋보기처럼 햇빛을 모아 반사시키는 까닭일까. 

▲ 나마스테! ABC 4,138m 안나푸르나 베이스 캠프의 입구에서

숙박지인 ABC(4,130m)를 향해 발길을 돌린다. 하늘은 청명해 구름 조각들은 푸르다 못해 짙어 깊은 바다에 물고기 몇 마리가 유유히 헤엄치는 듯하다. 눈이 쌓인 구릉지를 지나 평원의 완만한 오르막길 끝에 안나푸르나1봉이 보이고 그 아래 로지가 손에 잡힐 것 같다. 그러나 그 길은 가도 가도 끝없이 닿지 않는 신기루와 같아 봉우리로 해가 지고서야 도착할 수 있었다. 해가 진 설산은 금방 길이 얼어붙고 한겨울이다. 로지 안에서도 입김이 나며 냉기가 돈다. 온기라고는 그래도 침낭에 묻어둔 핫팩과 보온물병이니 그로 위안을 삼을 수밖에. 안나푸르나의 비경은 이른 아침 떠오르는 햇빛이 봉우리마다 촛불을 켜는 듯 물들어가는 일출이 장관이다. 1월의 날씨 치고는 재수가 좋았다. 간간이 산행의 끝자락에서 만나는 비와 눈, 어제부터 청명한 하늘이 오늘 아침까지 이어져 일출의 장관을 눈에 담을 수 있으니 신들이 산다는 봉우리들은 황금색으로 빛이 난다. 
안나푸르나1봉은 8,000m가 넘는 히말라야의 14좌 가운데 하나로 제1봉부터 4봉까지 있다. 2011년 이곳 안나푸르나의 남벽에서 악천후 속에 실종됐던 산악인들이 있으니,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언덕에는 ‘천상에서 더 높은 곳을 향하고 있을 그대들이여! 박영석, 신동민, 강기석 이곳에서 산이 되다’는 묘비명의 글씨가 아침 햇살에 뚜렷이 밝아온다. 

Epilogue

그곳에서 팀을 만들어 함께 걸었던 40대부터 70대까지 남녀 8명이 대전과 영월에서도 올라와 혜화동의 삼겹살집에 모두 모였다. 이제는 편안한 여행만을 다닐 거라며 가져갔던 침낭을 가이드인 ‘티와리’에게 주고 온 세 사람은 앞으로 침낭은 절대 쓸 일이 없다고 하는데, 어느 날 오지의 풍광이 그리워 또 떠나지 않을까 두고 볼 일이다. 한 사람은 “친구들이 안나푸르나에서 뭘 보고 느끼고 왔는지 물어보는데, 표현을 잘 못하겠다”고 하기에 직접 가보라고 하라고 했더니 “그 말이 맞다”고 한다. 현지에서 우리들의 몇몇 해프닝 같은 사건들은 전설로 남을 만한 이야기들이라며 안나푸르나에서 마시지 못했던 술 한잔으로 해단식은 더욱 화기애애했다. 
리베카 솔닛은 ‘걷기의 인문학’이라는 책에서 “순례는 무언가를 찾아가는 여행이고, 순례에서 걷는다는 것은 무언가를 찾기 위한 노동”이라고 했다. 우리는 순례를 했는지 여행을 했는지 모르지만 무언가를 찾기 위해 노동보다 더욱 심하게 걸었던 것만은 확실하다. NAMASTE!

이 성 영  여행객원기자(ladders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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