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톳길을 걸으면 오래전 고향의 어머니가 기다릴 것 같은 시간이 섬 곳곳에서 멈춰 버렸다. 
닭 울음소리가 들리고 붉게 삭은 함석지붕 위로 옛 기억이 따스한 햇빛으로 쏟아진다.
 

다을새길 가는 길

교동도는 민통선 지역으로 간단한 검문을 거쳐야만 들어갈 수 있는 곳이다. 2014년 교동대교가 들어서기 전에는 강화 하점의 창후리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월선포구로 들어가야만 하는 곳이었다. 봄기운이 가득한 3월 어느 날 월선포를 출발해 강화 나들이 코스인 ‘다을새길’을 걸었다. 

‘다을새길’은 달을신의 소리음인 다을새의 이름을 따서 탄생했다. 1933년에 지어졌다는 이색적이고 단아한 교동교회를 지나 외진 마을로 들어선다. 슬레이트지붕과 양철지붕들. 회반죽 떨어진 진흙 벽과 오래된 감나무. 붉은 황토 밭길을 지나 구불구불 숲길로 사라지는 임도 길을 걷는다. 그 길에는 국내에서 최초로 공자를 모신 오래된 향교 중 하나인 교동향교를 만나고, 상수리나무와 소나무 오솔길을 서서히 오르면 이색이 머물렀던 화개사도 만난다. 화개사 앞으로는 바다를 사이로 석모도 상주산이 수평을 이룬다.
 화개산(259m)은 교동도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화개산 정상에 오르면 교동섬 전체가 한눈에 들어오고 강화의 섬들보다 더욱 가깝게 보이는 황해도 연백평야가 보인다. 교동도와의 거리가 3㎞도 채 안 되는 연백은 한국전쟁 이전에는 남한 땅으로 소금과 해산물이 수시로 오가는 이웃이었다. 교동에서는 초등학교를 졸업하면 강화나 인천이 아니라 연백으로 상급학교를 진학하기도 했다고 하니 말탄포, 밤머리, 북진나루 등은 모두 연백으로 오가는 포구였다. 
산길을 내려가면 원형의 돔 형태로 쌓아 만든 한증 굴과 박석을 쌓아 만든 기단 등의 형태가 남아 있는 조선시대 한증막의 자취가 보인다. 교동면사무소에서 바다 건너 황해도 땅을 조망한 후 교동짬뽕집, 교동초등학교를 지나면 교동도의 명물시장인 대룡시장이 있다.

 

대룡시장은 한국전쟁 때 피란 왔다가 돌아가지 못한 황해도 주민들이 터를 잡은 곳으로 고향을 지척에 둔 실향민들이 고향의 연백장을 본떠 만든 골목시장으로 1970년대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교동이발관, 동산약방, 대성양복점, 교동스튜디오 등은 1960~70년대 우리들의 동네·골목길을 기억하게 한다. 대룡시장의 벽에는 그 시절의 살아가는 이야기들을 벽화로 재현했다. ‘딸, 아들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 ‘삼천리는 초만원’이라는 가족계획 포스터는 지나가 버린 짧은 시간들도 벌써 역사의 한 페이지처럼 아련하게 한다. 찹쌀꽈배기, 강아지떡, 뻥튀기 등 옛날 간식거리와 눈요기로 10여 분 남짓이면 돌아볼 작은 시장이지만 다방의 쌍화차 한잔과 오래된 공간 속을 여행하는 것은 각자의 느낌이 다르다. 대룡시장은 마치 세트장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주민들이 생활하고 물건을 거래하는 시장이어서 더 정감이 있다. 교동도를 찾은 관광객들은 대부분 대룡시장만 보고 돌아가지만, 찬찬히 들여다 보면 시장 말고도 교동도에는 제법 볼 것이 많다. 
역사가 100년이 넘은 교동초등학교는 오래된 방품림으로 둘러쳐진 학교담장의 향나무가 그 역사를 말한다. 교동도는 예로부터 왕족들의 유배지로 고려 희종을 비롯해 조선의 안평대군과 임해군, 능창대군이 이곳으로 유배를 왔다. 중종반정으로 쫓겨난 연산군도 이곳으로 유배 와서 생을 마감했다. 
화개산 남쪽의 읍내리에 있는 교동읍성은 조선조 인조7년(1629년) 수영이 설치됐을 때 축조된 것으로 현재는 반원 형태의 작은 남문인 홍예문만 남아 있어 섬의 오래된 역사를 보여준다. 천천히 걷다 보면 선조들의 숨결을 곳곳에서 느끼고 섬을 지키려 했던 역사가 이야기로 전해지는 교동도를 만난다.
강화나들길 9코스인 ‘다을새길’은 월선포선착장-교동향교-화개산-대륭시장-홍예문-월선포선착장으로 돌아오는 총 16㎞로 5시간 정도 소요된다. 

일상이 풍경으로 남다

교동도는 동쪽에 화개산, 남서쪽에 수정산, 서북쪽에 율두산을 중심으로 세 섬으로 이뤄져 있었다. 이들 섬 사이로 한강, 예성강, 임진강에서 흘러온 토사들이 쌓여 섬 주변으로 하구갯벌이 넓게 펼쳐져 있었다. 
고려 대몽항쟁을 위한 강화천도 때 군량미 확보 차원에서 비롯된 간척과 매립은 조선을 거쳐 일제강점기에 대규모로 진행돼 지금의 교동도가 만들어진 것이다. 
강화나들길 10코스인 ‘머르메가는길’은 섬과 섬을 연결했던 간척매립지로, 6·25 때는 활주로로도 사용했던 곧게 뻗은 도로를 따라 드넓게 펼쳐진 교동평야를 가로 질러 거대한 호수를 연상케 하는 난정저수지를 마주하는 길이다. 산과 바다가 어우러진 머르메로 가는 길은 옛사람들의 일상이 풍경이 돼 남아 있는 코스다. 머르메는 동산리(東山里)의 자연부락으로 가장 큰 마을이라는 뜻의 두산동(頭山洞)이라 했으나 우리말로 ‘머르뫼’로 부르던 것이 와전돼 현재까지도 ‘머르메’로 불리고 있다고 한다.  대룡시장-머르메–대룡시장으로 돌아오는 거리 17.2㎞로 6시간 정도 소요된다. 
교동 대룡시장 인근에는 관광플랫폼 교동제비집(032-934-1000)이 자리하고 있다. 관광정보나 다양한 체험을 접할 수 있는 곳으로 평화와 통일의 섬 교동도 프로젝트의 거점시설로, 주민이 직접 운영하고 있다. 자전거대여소도 있어 강화나들길코스를 자전거로 달려 볼 수도 있다. 노랑부리백로, 저어새 등 여름철새도 갯벌에서 발견되고, 여의도의 열배 정도 하는 드넓은 평야에 철새들의 날갯짓은 철책 없는 교동평야에 힘차게 울리고, 아스라이 해무에 잠기는 시간이 멈춘 섬! 봄바람은 교동도의 바다를 지난다.  

이성영  여행객원기자(ladders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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