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가 다르게 더워지는 날씨에 여름이 무르익음을 느낀다. 쉴 새 없이 돌아가는 에어컨 실외기가 온종일 뜨거운 바람을 내뿜는 도시의 여름은 가혹하기 이를 데 없다. 뙤약볕은 당연하고, 살만 닿아도 끈적이는 무더위가 연일 이어지니 피서(避暑)가 간절해진다. 이맘때쯤 생각나는 곳이 있다. 청명한 하늘과 상쾌한 바람이 기다리는 곳, 강원도 정선이다.

 

 

하늘 아래 가장 높은 숲길 ‘운탄고도(運炭古道)’

강원도 정선의 백운산(白雲山)에 오르면 한여름에도 서늘한 바람을 느낄 수 있다. 백운산에 오르는 길은 다양하다. 오랜 세월 사람들의 발길이 닿아 생겨난 등산로도 있고, 잘 정비된 트레킹 코스도 있다. 해발 1,000m가 넘는 산중인데도 구간 전체가 평평해 남녀노소 누구나 부담 없이 걸을 수 있는 하이원 하늘길이 대표적이다. 백운산 허리를 감싸고도는 하늘길은 과거 ‘운탄고도(運炭古道)’라고 불렸던 옛길을 정비한 것이다. ‘석탄을 운반하는 길’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이 길은 1960~80년대 만항재에서 함백역(40㎞)까지 쉴 새 없이 석탄을 나르던 길이었다. 
수백여 종 야생화와 희귀 고산식물이 자라는 아름다운 생태 관광 트레킹 코스로 되살아난 길에는 과거 탄광 산업의 풍광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코스 중 만나는 ‘도롱이 연못’은 1970년대 탄광 갱도가 무너져 내리면서 생긴 연못이다. 과거 광부의 아내들은 연못에 도롱뇽이 나타나면 탄광이 무사한 것으로 여기며 남편의 무사 귀환을 빌었다고 한다. 하늘길은 10여 개의 다양한 코스를 갖추고 있다. 운탄고도의 빼어난 풍광과 형형색색의 야생화 군락이 펼치는 화려한 장관을 감상하며 걷다 보면 어느덧 해발 1,426m의 마천봉에 도착한다. 하늘 아래 가장 높은 숲길답게 서 있는 발아래로 백두대간이 한눈에 들어온다. 코끝에서 느껴지는 청량한 공기와 시원한 바람은 고원에서만 누릴 수 있는 호사다.

 

국내 최초 3D 전망대 ‘병방치 스카이워크’

정선읍 북실리와 귤암리 사이의 병방산을 넘어가는 고갯길 병방치는 1979년 8월 귤암리로 가는 우마차 길이 생기기 전까지 주민들이 직접 생필품을 날랐던 옛길이다. 36 굽이를 뱅글뱅글 돈다고 뱅뱅이재라고도 불렸다. 나는 새도 쉬어간다는 험준한 고갯길 중간에 병방치전망대가 있다. 고갯마루 끝에는 스카이워크가 설치돼있다. 스카이워크란 높은 지대나 물 위에 바닥이 투명한 유리로 된 구조물을 설치해 하늘 위를 걷는 듯한 스릴감을 느끼게 하는 시설을 일컫는다. 일종의 유리 다리라고 할 수 있다. 해발 583m, 무시무시한 높이의 절벽 끝에 11m의 U자형으로 돌출된 스카이워크는 보는 것만으로도 아찔하다. 강화유리 보호를 위해 반드시 덧신을 신어야 한다니 간담이 더 서늘해진다. 금방이라도 까마득한 절벽 아래로 떨어질 것만 같은 유리 바닥 위를 살금살금 걸어서 간신히 스카이워크 끝에 이르면 밤섬 둘레를 따라 동강 물줄기가 굽이굽이 흐르는 비경과 마주하게 된다. 바로 애국가에 나오는 한반도 지형과 물돌이다. 아름답고도 깊은 여운이 느껴지는 풍경을 온몸으로 느껴보고 싶다면 짚와이어를 타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출발 포인트라는 병방치 전망대에서 시작한 짚와이어는 정선읍 광하리 모평 일원에 조성된 동강 생태체험 학습장까지 이어진다. 30도 각도로 설치된 와이어를 따라 시속 100㎞를 넘나들며 빠르게 하강하는 기분은 마치 하늘을 나는 것만 같다. 속도가 너무 빨라 무섭더라도 절대로 눈을 감아서는 안 된다. 한반도를 빼닮은 모양의 밤섬과 동강, 그 뒤로 보이는 백두대간의 푸른 숲을 놓치고 싶지 않다면.

 

예술을 캐는 탄광 ‘삼탄아트마인’

정선군 고한읍 함백산 자락의 삼척탄좌 정광 사업소. ‘삼탄 공화국’으로 불릴 만큼 그 위용을 자랑하던 탄광이었지만 석탄 산업이 사양화의 길로 접어들면서 2001년 문을 닫고 말았다. 오랜 세월 방치되던 폐광은 2013년, 문화 사업가 故 김민석 씨에 의해 ‘삼탄 아트마인’이라는 이름의 문화 예술 단지로 다시 태어났다. 관광자원으로 되살아난 폐광촌은 다양한 볼거리와 즐길 거리로 흥과 감성을 채워준다. 2015년에는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의 한국관광 100선에 선정됐으며, 2016년 인기리에 방영된 ‘태양의 후예’ 촬영지로 소개되면서 정선을 대표하는 관광지로 자리매김했다. 삼탄아트마인은 삼탄(Samtam), 예술(Art), 광산(Mine)의 합성어다. 리모델링을 거친 15개의 갤러리에는 탄광 시절의 추억과 애환을 담은 예술가들의 작품이 더해졌다. 가장 인상적인 공간은 레일 바이 뮤지엄(Rail by Museum)이다. 광부들이 갱도로 내려갈 때 사용하던 산업용 승강기와 산탄을 고한역으로 운반하던 철로, 그대로 멈춰버린 광차와 탄가루와 먼지가 뒤덮인 풍경 속에서 방문객들은 그 시절 광부의 애환을 오감으로 느낄 수 있다. 

 

연탄처럼 따뜻한 정이 있는 ‘고한 야(夜)한 구공탄 시장’

1967년 개설된 이래 50여 년 동안 정선군 고한읍을 밝혀 온 정겹고 따뜻한 전통시장 ‘고한 야(夜)한 구공탄 시장’. 예전에는 고한 시장이라는 이름이었는데, 2015년 문화관광형 시장으로 선정되면서 지금의 이름으로 바뀌었다. 이름만 달라진 것이 아니다. 탄광촌의 정체성을 드러내기 위해 시장 곳곳을 ‘석탄’을 주제로 재단장했다. 시장 주변 벽에는 옛 고한 탄광촌을 그린 벽화를 그렸고, 시장으로 들어가는 출입구와 내부 천장도 갱도를 본떠서 꾸몄다. 출입구의 번호도 갱도 1이라고 표시했다. 덕분에 시장에 들어가는 것이 꼭 탄광의 갱도를 들어가는 것처럼 느껴진다. 연탄아트도 전시돼있다. 연탄재가 부서지지 않도록 처리한 뒤 물감으로 그림을 그려 넣은 작품이다. 시장에는 강원 지역의 특산물과 생필품, 전통 음식을 파는 점포 100여 곳이 자리 잡고 있다. 오일장은 매월 1일과 6일에 열린다.  

 

이채영 여행객원기자 (여행비밀노트 chaey.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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