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긴 여름을 보내고 어느새 가을의 길목이다. 강, 산, 들이 조화를 이룬 경남 하동은 축복받은 땅이다. 여행 트렌드로 자리 잡은 ‘에코 힐링’ 여행지로도 좋은 곳이다. 언제나 흐름을 멈추지 않는 섬진강. 고운 모래가 많아 ‘모래가람, 다사강, 두치강’으로 불리기도 했던 섬진강은 하동의 얼굴이다. 바쁜 일상을 잠시 잊고 때 묻지 않은 자연에 심신을 맡겨보자. 

 

▲ 매실농원에서 본 섬진강

마를 날이 없는 여름 섬진강 

구례를 거쳐 섬진강길을 따라 하동으로 들어간다. 길 양쪽으로 펼쳐진 산과 들이 참으로 넉넉해 뵌다. 그 모습이 푸른 섬진강과 절묘한 대비를 이룬다. 한 폭의 멋진 산수화! 구례에서 하동으로 이어지는 200리길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이다. 전북(진안), 전남(곡성과 구례), 경남(하동)의 3도를 거치는 섬진강 500리길은 그래서 누구나 한 번쯤 가 보고 싶은 곳이다. 도란도란 흘러가는 섬진강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꿈틀대는 생명의 소리가 들린다.  
그렇게 섬진강을 곁에 두고 달린 지 20여 분. 상설시장으로 변한 화개장터를 둘러보고 쌍계사로 간다. 화개장터와 쌍계사를 잇는 길은 봄이면 벚꽃 터널로 변하지만 지금은 녹색 터널로 변해 있다. 바람에 팔랑이는 나뭇잎들이 길손에게 뭐라고 중얼거리는 것 같다. 호젓해서 좋은 쌍계사길 좌우로는 찻집들이 늘어서 있다. 화개천을 끼고 들어앉은 근사한 전통다실에 들어가면 아침 이슬을 먹고 자란 하동 야생차를 음미할 수 있다. 고요한 마음으로 마주앉아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다 보면 여행의 또 다른 재미를 발견하게 된다. 하동군에서 마련한 ‘힐링과 치유의 천년차밭길 투어’도 해 볼 만하다. 천년차밭길은 1,200년 역사를 간직한 하동 야생차의 세계중요농업유산 등재에 맞춰 차시배지 일원의 야생차밭을 걷기명소로 키우고자 조성한 힐링 탐방로다. 탐방로는 정금차밭에서 신촌차밭을 거쳐 쌍계사 인근 차시배지로 이어지는 2.7㎞ 구간으로 도보로 1시간 30분쯤 걸린다. 
쌍계사 입구, 신흥마을에서 두 갈래로 흘러온 냇물은 화개천에 이르러 그 폭을 넓힌다. 화개천 우측의 쌍계사 진입로에는 나도밤나무, 단풍나무, 전나무, 단백나무들이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다. 일주문을 지나 금강문과 천왕문을 거쳐 경내로 들어선다. 현실세계에서 피안의 세계로 들어온 느낌이랄까? 쌍계사 뒤로 난 산길을 따라 허위허위 올라가면 지리산 10경 중의 하나면서 설악산 대승폭포와 함께 우리나라 2대 폭포로 꼽히는 불일폭포가 나타난다. 백학봉과 청학봉 사이의 계곡에서 떨어지는 하얀 물줄기는 쩌렁쩌렁 그 울림이 깊고 우렁차다. 운이 좋다면 비 그친 뒤 폭포에 걸린 오색무지개도 볼 수 있다.  

 

▲ 악양 들판길

푸르고 넓은 악양 들판

다시 섬진강. 강변길을 따라 하동읍내 쪽으로 조금 가다 보면 평사리 공원이 나온다. 하얀 백사장과 푸른 강물이 파란 하늘과 어우러진 모습이 그림 같다. 여기저기 벤치가 놓여 있고 각양각색의 표정으로 서 있는 장승은 꽤나 해학적이다. 매점 등 편의시설도 잘 꾸며놔 지친 여행길에 잠시 쉬어가기 좋은 곳이다. 공원 앞 강변으로 나가 모래밭을 거닐거나 섬진강물에 뛰어들어 멱을 감아도 좋겠다. 
평사리 공원에서 드넓은 악양 들판을 바라보며 조금 더 내려가면 최참판댁을 알리는 표지판이 보인다. 계단식으로 이어진 80여만 평의 들판은 얼핏 보면 그리 커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마을 언덕배기에서 보면 입이 딱 벌어질 정도로 광활하다. 이곳은 한국전쟁 때 빨치산과의 전투가 치열했던 곳으로, 악양은 산 한가운데 호수(동정호)가 있는 모습이 중국의 악양을 빼닮아 붙여진 이름이다. 악양은 그 넓이만큼이나 여러 마을을 품고 있는데, 지리산 품에 안겨 있는 이들 마을은 우리네 고향의 정서를 그대로 보여준다. 
최참판댁은 평사리 마을 안쪽 고소산성 오르는 길 산 중턱에 있다. 지리산 줄기를 병풍처럼 두른 고소산성은 둘레 560m, 높이 4m의 견고한 석성으로 600년대 신라가 백제를 공격할 때 나당연합군이 백제의 원군이 섬진강으로 들어오는 걸 막기 위해 구축했다. 최참판댁은 한눈에 봐도 웅장하고 화려하다. 우리 한옥의 면모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외양간, 부엌, 우물, 정자에 안채와 사랑채 별당채 행랑채는 물론 초당과 사당까지 모두 14동의 한옥이 소설 속 분위기를 그대로 담아내고 있다. 
최참판댁을 뒤로하고 구불구불 이어진 들길과 돌담길을 따라 조금 올라가면 최참판댁의 실제 모델로 알려진 조씨 고가를 만나게 된다. 지리산 형제봉 아래에 고즈넉이 자리한 이 집은 풍수지리에 어두운 사람일지라도 명당이라는 걸 금방 알아챌 수 있다. 형제봉은 저 멀리 지리산 천왕봉에서 남부 능선을 따라 내려온 산줄기다. 180년 전에 지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잘 보존돼 있다. 
악양의 푸근한 정취에 좀 더 취하고 싶다면 ‘슬로시티 토지길(섬진강을 따라가는 박경리 토지길)’을 걷는 것도 좋겠다. 두코스 총 31㎞에 이르는 이 길은 빠름의 시대에 느림을 느낄 수 있는 매력 넘치는 도보여행 코스다. 그렇게 땀을 흘리며 토지길을 걷다 보면 시원하게 흘러가는 악양천을 만나게 되고 땡볕을 막아주는 숲그늘(취간림)도 나타나 발걸음이 가볍다.  

 

경상도와 전라도가 만나는 곳

악양(평사리)에서 나와 광양으로 이어지는 섬진교에서 섬진강을 바라본다. 섬진교 아래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하동송림이 펼쳐져 있다. 300년생 소나무 800여 그루가 빽빽하게 숲을 이루고 있는데 섬진강과 어우러진 모습은 언제 봐도 싱그럽다. 옛 시인들은 이 숲을 일러 ‘백사청송(白沙靑松)’이라 부르며 아꼈다고 한다. 
섬진교는 하동(경남)과 광양(전남)을 이어준다. 이 두 고장은 행정 주소는 다르지만 생활권은 하나다. 섬진교를 건너 우측 방향으로 조금 올라가면 매실 명인 홍쌍리 여사가 일군 6만평 규모의 매실농원이 있다. 농원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섬진강과 매실마을 풍경이 참으로 절경이다. 푸른 섬진강 물줄기 저쪽은 경남 하동땅이다. 매실농원 중앙에는 매실을 담그기 위해 놓아둔 수천개의 옹기들이 들어차 있다. 

 

▲ 청학동 마을

옛것의 아름다움을 찾아서

이제 하동 여행 마지막 코스인 지리산 청학동으로 들어간다. 횡천면 소재지를 거쳐 횡천강을 따라 청학동으로 가는 길은 섬진강길만큼이나 아름답다. 넉넉한 녹색 자연과 푸른 호수(하동호)가 내내 길동무가 돼준다. 청학동은 청암면 묵계리 삼신봉(1,294m) 남쪽자락 해발 750m의 지리산 중턱에 자리 잡고 있다. 수염 기른 훈장님의 가르침을 배울 수 있는 곳이다. 줄잡아 수십 군데 이르는 이들 서당은 저마다 독특한 교육 방식으로 전국 각지에서 찾아온 초·중·고등학생들에게 예절, 전통놀이, 한문, 무예, 판소리, 시조 등을 가르친다. 공부에 매몰돼 평소 쉽게 접하지 못했던 산교육을 배우고 느껴 볼 수 있어 방학 동안에는 전국에서 많은 학생들이 찾아온다. 

▲ 삼성궁

 청학동 깊은 곳에는 한민족의 뿌리인 환인, 환웅, 단군을 모신 삼성궁(三聖宮)이 있다. 도복을 입은 엄숙한 수행자의 안내에 따라 안으로 들어가면 신비한 세상이 펼쳐진다. 환인, 환웅, 단군을 모신 건국전을 보고 국조전을 지나면 삼성궁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팔각 정자, 청학루에 이르게 된다. 
남해고속도로 진교 나들목에서 가까운 백련리 도요지 마을(사기아름마을)에 가 보는 것도 좋겠다. 연꽃이 많아 백련리라 불리는 이 마을은 예부터 대접, 접시, 사발, 항아리 등 우리 전통 찻사발을 굽던 곳이다. 마을 앞에 펼쳐진 연꽃밭도 볼 거리. 하늘을 향해 봉오리를 내민 청정한 연꽃들이 길손을 반긴다. 마을에 있는 도요방에서는 미리 예약하면 가마 불지피기, 도자기 빚기, 도자기 굽기 같은 체험을 해 볼 수 있다. 


레일바이크와 짚와이어

경전선 복선화로 폐선된 옛 북천역과 양보역 구간에 설치한 레일바이크도 인기를 얻고 있다. 총 길이 5.3㎞로 4인승 45대와 2인승 25대로 운행하는데 오전 9시30분부터 오후 5시30분까지 하루 6차례 출발한다. 국내 레일바이크 터널로는 가장 긴 1.28㎞의 이명터널에는 무지개 조명과 빔 프로젝트 같은 환상적인 경관조명이 설치돼 시선을 사로잡는다. 탑승료는 평일 성인 기준으로 2인승 2만5,000원(금·토·일·휴일 3만원), 4인승 3만원(금·토·일·휴일 3만5,000원)이다. 또한  남해안 일대에서 가장 높은 해발 849m의 금오산 정상에는 짚와이어가 설치돼 관광객들을 불러모으고 있다. 한려해상국립공원 다도해의 푸른 절경을 감상하면서 최고 시속 120㎞ 하강하며 약 5분간 스릴을 만끽할 수 있다. 짚와이어 외에 빅스윙, 파워 팬, 퀵 점프 등 다양한 어드벤처 레포츠도 즐길 수 있다.


▶맛집=하동은 볼 거리 못지않게 음식 또한 뒤지지 않는다. 하동의 맛은 거개가 섬진강에서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재첩, 참게, 은어 등이 그것들로 요즘은 재첩잡이가 제철을 맞았다. 수박향이 난다는 은어 잡이도 한창이다. 초장에 찍어 입에 넣은 순간 은어회의 매력에 푹 빠진다. 섬진강 주변에 하동의 별미인 재첩국(회), 은어구이(회) 등을 내놓는 식당들이 많다. 
▶숙박=쌍계사 주변의 펜션이나 민박을 추천한다. 청학동에 있는 몽양당(055-884-7066)은 학생들에게 예절교육을 가르치는 곳으로 유명하다. 

김초록  여행객원기자 
trueyp26309@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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