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대지는 온통 진갈색이다. 집을 나서면 차가운 바람이 몸을 휘감는다. 이번에 소개하는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들의 도시’ 고양은 11월 여행지로 제격이다. 자연, 역사, 맛, 놀이, 체험, 문화 등 몸이 즐거운 요건을 두루 갖추고 있어 가족 단위 여행객들에게 꼭 맞는 볼거리를 제공한다.
 

▲ 행주대첩비와 대첩비각

전망이 뛰어난 행주산성

고양의 첫 방문지로 행주산성(사적 제56호)을 택한 것은 접근이 편리하기 때문이다. 서울과 파주를 잇는 자유로를 따라가다 신행주대교 못미처 좌측 한강변 덕양산에 자리 잡고 있다. 행주대첩으로 유명한 행주산성은 문화유적과 함께 아름다운 산수를 감상할 수 있는 훌륭한 여행 코스다.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전라도 순찰사로 있던 권율 장군은 이곳에서 병사를 이끌고 왜군 수만 명을 무찔렀다. 당시 성안의 부녀자들은 치마폭에 돌을 주워 담아 싸움에 일조했는데 우리나라 전쟁 역사에 따로 없는 ‘재주머니 던지기’라는 전법(戰法)이다. 오늘날 일상생활에서 널리 쓰이는 ‘행주치마’라는 이름이 바로 여기서 유래됐다는 설이 있지만 확실치 않다. 권율 장군의 지략이 제대로 통한 행주대첩은 한산대첩, 진주대첩과 함께 임진왜란 3대 대첩으로 꼽힌다. 
매표소를 지나 행주산성 정문을 들어서면 권율 장군 동상이 늠름히 서 있고, 야트막한 산책로를 따라 정상에 오르면 한강 물줄기와 올림픽대로, 자유로, 난지도, 여의도, 남산, 저 멀리 임진강까지 두루 조망할 수 있다. 권율 장군의 영정을 모신 충장사와 대첩비각, 행주대첩비 등 역사의 증거물들을 보노라면 마음이 숙연해진다. (행주산성 관람시간: 오전 9시~오후 6시. 매주 월요일은 휴관. 행주산성관리사무소 031-8075-4652) 
 산성 진입로에 형성된 맛집촌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외관이 독특한 음식점이 줄잡아 수십 곳에 달하는데 장어, 칼국수, 돈가스, 생선회, 매운탕, 닭백숙, 한정식, 브런치, 오리탕, 갈비 등이 주 메뉴다. 이 중에서도 장어구이와 국수는 이 마을의 명물이 된 지 오래다. 해질녘이면 지글지글 장어 굽는 냄새가 행인들의 발걸음을 붙잡는다. 
 이 마을의 장어구이는 살이 통통하고 부드러운 장어를 숯불에 구워 저마다의 비법으로 양념을 해 맛이 뛰어나다. 국수도 행주산성을 찾은 사람들이 반드시 맛봐야 할 음식이다. 잔치국수, 어탕국수, 초계국수, 비빔국수 등 저마다 색다른 맛으로 손님들의 발길을 붙잡는다. 구수한 육수에 양파, 파, 김, 고춧가루 등 양념이 들어간 잔치국수는 단연 인기다. 곁들여 나오는 김치와 양념장도 입맛을 당긴다. 주말 점심시간엔 식도락가들이 몰려들어 수십 명의 긴 줄을 서기도 한다.

▲ 예릉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두 능(陵)

고양은 크게 신도심(일산구)과 구도심(덕양구)으로 나뉘어 있다. 일산 동구 정발산 북쪽 기슭에는 조선후기 우리나라 중부지방의 전통 농촌 주택의 구조를 원형 그대로 보여주는 초가(경기도 민속문화재 제8호) 한 채가 있다. 약 150년 전에 지은 것으로 추정되는 이 집은 온돌이 있는 ‘ㄱ’자형 안채를 중심으로 맞은편에 행랑채가 있는데 전체적인 모습은 ‘ㅁ’자형이다. 집을 구성하고 있는 기둥, 대들보, 중방, 문틀, 마루, 서까래는 재목을 밤나무로 써서 소박하면서도 튼튼해 뵌다.
 일산에서 수도권 지하철 원흥역 옆의 가시골로 간다. 고양시농업기술센터 내에 있는 가와지볍씨박물관이 목적지다. 가와지볍씨는 약 5,020년 전 신석기 시대의 볍씨로 1991년 일산신도시를 개발하던 중 가와지마을(고양시 대화동)에서 발견됐다. 신석기 시대 때 이미 한반도에 벼농사가 시작됐음을 알려주는 중요한 농경사적 증거다. 박물관에는 가와지볍씨에 대한 자료와 선사시대부터 근대까지의 고양의 농경문화 변천사를 두루 전시해놓고 있다.
고양은 능이 유난히 많다. 능이 많다는 건 이 고장의 역사가 간단치 않았음을 방증한다. 가와지볍씨박물관 주변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서삼릉과 서오릉이 있으며 가까이에 고려공양왕릉, 최영장군묘, 성녕대군묘도 자리 잡고 있다. 
먼저 고양시 용두동 통일로 옆에 들어선 서오릉(사적 제198호)으로 간다. 이곳에는 조선 왕후를 모신 5개(창릉, 명릉, 익릉, 홍릉, 경릉)의 능이 있다. 오릉 외에도 명종의 첫째 아들 순회세자의 순창원과 영조 후궁 영빈 이씨(사도 세자의 생모)의 수경원이 있으며 숙종의 후궁인 장희빈의 대빈묘도 한쪽에 자리 잡았다. 서오릉 안으로 들어가니 오솔길 가에 늘어선 소나무, 참나무들이 반갑게 인사한다. 
서오릉에서 통일로를 따라가다 농협대학 쪽, 원당 가는 길로 2㎞쯤 들어가면 조선말기 왕실의 가족 묘지인 서삼릉(사적 제200호)이 나온다. 희릉, 효릉, 예릉 등 3개의 능이 서울 서쪽에 있다 해 서삼릉이라 한다. 인종의 친모 장경왕후 윤씨를 모신 능이 ‘희릉’이고, 중종의 아들 인종과 인종의 비(妃)인 인성왕후를 모신 능이 ‘효릉’, 조선 제25대(구한말) 철종과 철인왕후 안동김씨를 모신 능이 ‘예릉’이다. 조선이 쇠국의 시기를 걸어갔던 그 당시, 파란 많은 삶을 살았던 세 임금의 무덤이 함께 자리하고 있는 셈이다. 
서삼릉 옆에 들어선 원당종마목장은 가을 사색에 빠지기 딱 좋은 곳이다. 초지 옆으로 난 산책길을 따라 안쪽으로 들어가면 광활한 초원이 나타나는데 드문드문 말들이 풀을 뜯는 모습을 가까이서 지켜볼 수 있다. 목장을 천천히 돌아보는 데 약 1시간 정도 걸리며 특히 관리사무소 좌측으로 난 오솔길은 종마장 전체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전망 포인트. 막힘없이 탁 트인 초원을 바라보노라면 내가 마치 동화(童話) 속의 목동이 된 듯하다. 

 

▲ 가와지볍씨박물관
▲ 종마목장

구경거리 즐비하다

원당 화훼단지 부근에 있는 공양왕릉(사적 제191호)은 고려의 마지막 왕인 공양왕과 순비 노씨의 능이다. 쌍릉으로 된 무덤은 왕과 왕비를 모셨다. 능 앞엔 비석 1기와 상석이 놓여있고 장명등 1기가 서 있다. 인근에 있는 생태동물원 ‘쥬라리움’도 가볼 만하다. 국내에서 가장 큰 실내동물원이면서 야외동물원, 식물원, 체험교실, 카페테리아 등 다양한 시설과 프로그램을 갖췄다. 라마, 캥거루, 악어 등 총 95종 동물 300여 마리가 방문객들을 맞이한다. 
 최영장군 묘도 근방에 있다. 최영장군은 외적을 물리치고 고려왕실을 보호한 명장으로 ‘황금 보기를 돌 같이 하라’는 말로 유명하다. 원래 이 말은 최영이 16세 때 최영의 아버지 최원직이 죽으면서 남긴 유언이라고 한다. 평소 성품이 온건하고 강직했던 최영은 아버지의 말을 좌우명으로 삼고 항상 되새기면서 살았다고 한다. 사각 양식의 무덤은 뒤편에 부친 최원직의 묘와 함께 있는데 원형이 잘 보존돼 있다. 
 조선시대의 역관(驛館) 터인 벽제관지에도 가본다. 그 옛날 중국에서 오던 사절들이 쉬어가던 곳으로, 임진왜란 때는 명나라 군사와 일본군이 격전을 벌인 곳이기도 하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에 의해 일부가 헐렸고 지금은 관사의 윤곽과 터만 남아 있다. 벽제관지에서 시작하는 고양관청길도 열려 있다. 고양의 옛 관아 자리인 고읍마을과 고양과 파주를 잇는 관청고개(관청령)를 지나는 길로, 관청고개에 서면 저 멀리 관악산이 보일 정도로 전망이 좋다. 
 중남미 각국의 역사와 문화,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중남미 문화원에도 들러보자. 중남미 지역에서 30여 년간 외교관 생활을 했던 이복형 선생이 2,500여 점의 중남미 문화유산을 모아 놓은 곳이다. 박물관엔 중남미의 대표적 문화인 마야, 아즈텍, 잉카 시대 유물이 전시돼 있으며 미술관엔 중남미 대표 작가들의 그림과 조각, 전통의상과 직물이 전시돼 있다. 

 

 

➲ 숙박・맛집

 

 

북한산 자락(지축동)의 흥국사(02-381-7970)는 어지러운 마음을 달랠 수 있는 템플스테이를 운영한다. 호수공원 주변에 있는 엠블호텔 킨텍스(031-927-7700)는 경기 북부 유일의 특급호텔이다. 고양은 입맛 당기는 맛집 거리가 잘 발달해 있다. 행주산성 장어마을(국수촌)을 비롯해 수역이마을, 대화동 먹자골목, 밤가시 일식촌, 라페스타 먹자골목, 풍동애니골 등이 그곳들이다. 

여행문의: 고양시청 신한류관광과 031-8075-3412, 서오릉관리사무소 02-353-6363, 서삼릉관리사무소 031-966-6776

김초록  여행객원기자 
trueyp26309@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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