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투고

강정석  입주민
서울 성북구 정릉e편한세상

 

 

나는 찐빵 집 삐걱거리는 간이 의자에 앉으며 주문했다. 
“아주머니! 여기 찐빵 8인분 주세요.” 
돌멩이라도 소화할 것 같은 고교 시절, 오후 4시면 배가 출출한 시간이었다. 그럴 때 찐빵을 실컷 먹도록 사준다고 하니 친구들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웬일이야? 짠돌이 네가 한턱까지 다 내고?” 한 친구가 의아하다는 듯이 물었다. 
“오늘 내가 한턱낸다. 실컷 먹기나 해라!”
나의 말투엔 베푸는 자의 여유가 묻어나왔다. 곧 흰색 비닐이 씌워진 탁자 위에 먹음직한 찐빵이 수북하게 올려졌다. 찜 솥에서 바로 꺼낸 빵에선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한 개를 집었다. 너무 뜨거워 다시 내려놨다. 손을 후후 불고 나서 다시 집어 들고 반으로 쪼개니 붉은색 팥소가 가득하다. 후 불면서 한입 베어 무니 달콤한 맛이 온몸에 기분 좋게 퍼져나갔다.
1964년 고1 때였다. 용돈이란 이름조차 듣기 힘든 가난했던 55년 전 그 시절. 내가 친구들에게 한턱 내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서울신문 주말 퀴즈에 당첨돼 찐빵쯤은 100번도 더 살 만한 상금을 받았던 것이다. 당시 주요 신문사들은 경쟁적으로 주말 퀴즈잔치를 벌였다. 주로 가로세로 낱말 맞히기였는데, 대개 신문에 게재된 기사에서 출제됐다. 지난 일주일간 신문만 뒤적이면 쉽게 맞출 수 있는 수준이었다. 2원짜리 우편엽서에 신문에 인쇄된 퀴즈응모권을 오려 붙이고 정답을 썼다. 그 순간 머릿속에 퀴즈 추첨하는 사진이 떠올랐다. 유명 연예인이 경찰관 입회하에 추첨한다. 투명한 추첨함 속에는 전국에서 응모한 엽서가 빼곡하다. 먼저 경찰관이 상자를 아래위로 흔들어 엽서를 섞는다. 추첨하는 사람이 다시 상자 위에 뚫린 구멍으로 손을 넣어 휘휘 뒤집어 마구 섞는다. 그런 후에 행운의 한 장을 뽑아 든다. 정말 억센 행운이 따르지 않으면 당첨될 수가 없는 확률이었다. 수없이 포개진 엽서 중에서 추첨자 손에 잘 잡히게 해보자. 나는 잔꾀를 생각해냈다. 엽서 네 모서리에 색종이를 붙이는 것이다. 책꽂이에 가지런히 꼽힌 책보다, 조금 돌출된 책이 더 뽑아내기가 쉬운 것처럼 말이다. 어쩌면 반칙 엽서로 추첨함에 들어가보지도 못하고 쓰레기통으로 갈 수도 있었다. 그러나 추첨함에 들어가기만 하면 당첨 확률은 그만큼 더 높아질 것이다. 나는 빨간 색종이를 엽서 네모서리에 10㎜쯤 덧붙였다. 엽서의 크기가 20㎜ 커진 것이다. 나는 빨간 띠로 멋을 부린 엽서를 우체통에 넣었다. 보름 후, 당첨자 명단이 실린 신문의 문화면을 펼친 순간 선명하게 활자화돼 있는 내 이름을 보고 깜짝 놀랐다. 응모엽서 6,155장 중 단 한 사람으로 뽑힌 게 나였다. 추첨은 당시 청춘스타였던 영화배우 전향이 씨가 했다. 빨간 색종이 테를 두른 내 엽서를 들고 웃고 있는 사진 속 그녀는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처럼 예뻤다. 상금은 3,000원, 지금 가치로 따져보면 대충 50만원쯤 될 듯하다. 고등학생에겐 큰 액수였다. 상금으로 받은 등기우편환을 들고 곧바로 우체국에 달려가서 100원짜리 빳빳한 현금으로 찾았다. 돈 속의 세종대왕님도 웃고 계셨다. 단숨에 집으로 달려왔다. 방문을 확 열어젖혔다. 휙! 빳빳한 새 돈 30장을 천장을 향해 뿌렸다. 돈은 공중에서 나풀나풀 춤을 추며 방바닥에 내려앉았다. 돈이 공중에서 춤을 추며 내려오는 멋진 모습을 난생처음 봤다. 방안에 있던 어머니와 누나가 화들짝 놀라며 나를 바라봤다. 나는 씩 웃으며 말했다. 
“어머니, 신문 퀴즈 상금입니다!”
내 평생 돈을 하늘로 뿌려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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