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양천구 A아파트에서 승강기 교체공사를 추진하기 위해 장기수선충당금을 인상하는 과정에서 전체 입주자에게 장충금을 ‘균등 부과’한 것은 입주민들의 의견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아 무효라는 취지의 법원 판결이 나옴에 따라 파장이 우려된다. 
이례적인 법원 판결에 공동주택 관리현장뿐만 아니라 법조계, 정부 관계자도 ‘공동주택 관리현실과 너무 동떨어진 판결이다’ ‘그럼 어린이 없는 입주자는 어린이놀이터 관련 장충금 부담 안 해도 되나?’ ‘어르신 없는 가구는 경로당 유지보수비 안 내도 되나?’ ‘옥상방수는 최상층 입주자만 부담해야 하나?’ ‘실제 아파트에 거주하고 있지 않은 소유자는?’ 등등 대부분 이해할 수 없는 판결이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아파트 전문 변호사들을 비롯한 대한주택관리사협회, 국토교통부에서는 이번 판결은 개별 사안일 뿐 모든 아파트에 일률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고, 현행 공동주택관리법령과는 배치된 판결인 만큼 앞으로 유사한 판결에서는 이와 다른 판결이 나올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지난달 17일 서울남부지방법원 민사17단독(판사 이광열)은 A아파트 입주민 B씨가 이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를 상대로 제기한 장충금 균등 부과처분 취소소송에서 입주민 B씨의 손을 들어줬다. 
지난 1994년 12월경 사용승인을 받은 A아파트는 4개동 298가구로 승강기 12대가 설치돼 있어 1·2층 입주자는 총 48가구.
이 아파트 입대의는 2019년 1월경 승강기 교체와 관련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교체방법: 일부 교체 67가구, 전부 교체 150가구 ▲자금 확보: 장충금 인상 117가구, 승강기 장충금 별도 적립 92가구 ▲주요 의견: 1·2층 가구 제외 또는 차등부담 등으로 나타났다. 
이후 승강기 교체비용 균등 및 차등 부과 등을 놓고 ‘입주자 총회’도 열어 토론을 벌였지만 52가구만이 참석해 의결에 이르진 못했다. 
이에 같은 해 3월경 전체 입주자들의 의견을 확인하기 위해 안내문과 동의서를 배부, 279가구가 동의서를 제출했고 이 중 142가구가 균등 부과, 120가구가 차등 부과를 선택했다. 
이러한 결과를 토대로 입대의는 5월경부터 장충금을 종전 2만원에서 5만원으로 5년간 인상키로 하고 전체 입주자에게 균등 부과했다. 그러자 장충금 균등 인상에 반대했던 1·2층 입주자들 중 43가구가 B씨의 소 제기에 동의한다며 사실확인서를 작성해줬다. 
입주자 B씨는 “입대의는 1·2층 입주자의 반대가 있었음에도 적법한 절차를 거치지 않고 다른 층 입주자와 마찬가지로 1·2층 입주자의 승강기 교체 관련 장충금을 2만원에서 5만원으로 인상했다”며 “승강기를 이용하지 않는 1·2층 입주자에게도 승강기 교체 관련 장충금을 균등 부과한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반면 입대의는 “관련 법령 및 아파트 관리규약에서 장충금은 가구당 주택공급면적에 따라 부과하도록 정하고 있다”며 “1·2층 입주자에게도 이에 따라 장충금을 부과했을 뿐이며, 투명하고 공정한 절차를 거쳐 장충금을 균등 부과하기로 정했다”고 반박했다. 
이에 대해 법원은 입대의가 1·2층 입주자에게도 장충금을 주택공급면적에 따라 부과하기로 결정하고 그에 따라 B씨에게 장충금을 인상해 부과한 것은 위법하다고 보고, B씨는 인상분 3만원을 입대의에 납부할 의무가 없다고 판시했다. 
법원은 이 같이 판단한 이유에 대해 “입대의는 승강기 교체를 위한 장충금 부담비율 문제에 관해 1·2층 입주자와 3층 이상 입주자들 사이에 첨예한 대립이 있었음을 잘 알고 있었고, 투명하고 공정하게 입주자의 의견을 듣지 않고 그에 관해 결정할 경우 입주자들 사이에 분쟁이 발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예측할 수 있었다”면서 “B씨를 포함한 1·2층 입주자는 승강기를 이용하지 않으므로 승강기 교체를 위한 장충금을 균등 부과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취지의 주장은 승강기가 공용부분임을 감안해도 상당한 설득력이 있다”고 설명했다. 

장충금 ‘균등 부과’ 법령에 부합하나 입주자들 의견 충분히 고려치 않아 ‘무효’

서울남부지법

이 아파트는 지하주차장이 없어 1층 입주자가 승강기를 직·간접 이용한다는 것은 생각하기 어렵고, 2층 입주자는 승강기를 이용하더라도 3층 이상 입주자에 비해 낮은 빈도로 이용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이러한 사정을 충분히 고려해 승강기 교체를 위한 장충금 부담 비율을 결정했어야 했다는 것이 법원의 입장이다. 
법원은 “안내문과 설문서 배부 결과 142가구가 균등 부과를, 120가구가 차등 부과를 선택했는데, 입대의가 B씨를 포함한 1·2층 입주자 주장의 구체적 내용과 합리성, 차등 부과하는 다른 아파트의 사례 등을 안내문에 함께 적었다면 다른 결과가 나왔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오히려 이 같은 안내문에도 불구하고 120가구가 차등 부과를 선택한 것은 입주자들 사이에서도 차등 부과에 상당한 공감대가 있다는 사실을 나타낸다”고 해석했다. 
이에 입대의로서는 B씨를 포함한 1·2층 입주자의 입장, 입주자들 사이 의견 대립, 균등 부과와 차등 부과의 장·단점, 다른 아파트 사례 등을 충분히 알린 후 추가적인 의견수렴 등의 절차를 거쳐 합리적인 결정을 했어야 함에도 추가적인 의견수렴이나 동의를 받지 않고 설문결과를 토대로 균등 부과를 결정했다고 지적한 것이다. 
한편 입대의 측은 “승강기를 교체할지 여부는 입주자 과반의 결의가 필요하나 장충금을 가구별로 어떻게 부과할지 여부는 입주자 의결사항이 아님에도 일부 입주자의 의견을 반영해 입주자의 동의를 받은 것”이라고 항변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법원은 “공동주택관리법 시행규칙 별표1 제7호에 ‘월간 가구별 장충금 산정방법과 A아파트 관리규약에서는 가구당 주택공급면적을 기준으로 장충금을 산정하도록 정하고 있고 입대의의 균등 부과 결정은 이에 부합한다”고 인정하면서도 “관련 법령과 관리규약에도 불구하고 입주자들은 장충금 부담비율을 가구별로 달리 정할 수 있다”면서 “장충금 부담 비율은 법령보다 입주자들의 자치 규약이 우선 적용되고, 규약은 입주자들이 변경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해당 법령과 규약은 일반적인 공용부분, 즉 입주자가 공동으로 이용할 것으로 예상되는 주차장, 계단, 건물의 외벽 등의 보수·유지를 위한 장충금을 예정해 규정한 것이고, 사실상 일부 입주자가 사용하지 않거나 다른 입주자에 비해 적게 사용할 것이 예상되는 경우까지 예정해 규정한 것은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한편 법원은 “보수가 필요한 공용부분마다 입주자의 사용빈도, 편익 등을 고려해 장충금의 부담비율을 정하는 것은 사실상 어려울 뿐만 아니라 바람직하다고 할 수도 없으며, 공동주택의 공용부분은 입주자 등이 함께 이용하거나 이용할 수 있는 부분이고 입주자는 그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입주한 것이기 때문에 결국 승강기 노후로 인한 교체비용의 부담비율 역시 입주자의 다수 의견으로 정해질 수밖에 없다”고 자인했다. 
그러나 “해당 아파트 1·2층 입주자는 48가구고, 3층 이상 입주자는 251가구이므로 충분한 논의나 설명 없이 입주자의 의견을 물을 경우 다수는 균등 부과에 동의할 것으로 예측되며, 입대의는 장충금 비율에 관해 입주자들 사이에 심각한 대립이 있음을 알고서도 입주자들에게 적절하지 않은 안내문을 보냈고, 그럼에도 입주자 120가구가 차등 부과를 선택했다”고 설명했다. 
법원은 결과적으로 “입대의가 법령과 규약에 따라 장충금을 균등 부과하기로 결정했더라도 적법하다고 단정할 것이 아니라 입주자대표들로 구성된 입대의가 입주자 등의 권리와 의무, 입주자 간 분쟁 등을 충분히 고려했는지도 장충금 균등 부과 결정의 적법 여부에 고려돼야 함에도 이 같은 의무를 충실히 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 B씨 청구를 받아들였다.     
이와 함께 “다수의 의사에 따라야 한다고 하려면 공용부분의 사용빈도 등을 조사해 차등 부과하는 것은 어렵다는 등의 균등 부과의 필요성과 B씨를 포함한 1·2층 입주자들이 승강기를 전혀 이용하지 않거나 낮은 빈도로 이용한다는 특별한 사정에 관해 입주자들 사이에 충분한 의견 교환과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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