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기획-현장르포 달려간다<1> 아파트의 변비탈출 횡주관 청소현장 가다

 

본지는 2020년 새해를 맞아 새로운 기획시리즈 ‘현장르포-달려간다’를 새롭게 선보입니다. 우리가 흔히 접하지만 자세히 알지 못하는 공동주택 관리현장의 여러 속사정을 살펴보고, 문제점들을 다각도로 재조명하며 다시 함께 생각해보는 좋은 기회가 될 것입니다. 평소에 궁금했던 부분이나 문제점에 대해 제보해 주시면 본지 기자들이 직접 달려가 진실을 파악해 보도할 것입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성원을 부탁합니다.  <편집자 주>

 

아파트를 포함한 공동주택뿐만 아니라 대규모 상가건물이나 오피스빌딩엔 많은 종류의 배관들이 복잡하게 지나다니고 있다. 이들 배관은 규격과 용도가 모두 제각각이지만, 모양은 서로 비슷해서 전문가가 아니면 구분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
지하주차장엔 외부와 통하는 대형 파이프들이 두꺼운 보온재로 둘러싸여 있다. 대표적으로 상수도와 하수도배관, 오수관, 소방배관 등이 있다. 이들이 인체의 몸을 한 바퀴 돌며 영양과 산소를 공급하고 노폐물을 배출하는 동맥이나 정맥과 같은 역할을 한다면, 그 주변엔 각 가정이나 사무실로 이어지는 소형배관들이 모세혈관처럼 각 라인마다 세밀하게 연결돼 있다.
혈관이 막히면 인체의 신진대사가 멈추는 것처럼 배관이 막히면 건물의 활동도 일시에 멈출 수밖에 없다. 수돗물이 공급되지 않거나 하수가 배출되지 못하면 일상생활을 하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배관이 막히는 사고는 대부분 하수관과 오수관에서 벌어진다. 특히 하수관으로 수많은 종류의 폐기물이 버려지기 때문에 이 성분들이 뭉쳐서 굳으면 아무리 커다란 파이프라도 막히는 건 시간문제다.

게다가 대부분의 배관들이 금속이나 PVC처럼 두껍고 불투명한 재질인데다 보온재까지 감겨져 있어 이 배관이 대체 언제쯤 막힐 것인지에 대해선 그 누구도 알 길이 없다. 척척박사가 아니라 박사 할아버지가 와도 절대 맞출 수 없는 게 현재 배관의 상태다.
파이프 안에선 긴 시간에 걸쳐 여러 폐기물들이 층층이 쌓여간다. 90%가 막혀도 물이 어느 정도 빠져나갈 수 있으므로 이상한 낌새를 느끼기 어렵다. 그러다가 남은 10%마저 막혀버리면 갑자기 물이 빠지지 않거나, 심하면 저층가구의 변기나 하수구로 더러운 물이 역류하게 된다. 입주민들은 대부분 이런 일을 겪어본 적이 없기에 변기에서 똥물이 솟구쳐 올라오면 깜짝 놀라 혼비백산하게 된다. 급히 몸을 피하려다 다치기도 한다.
이럴 때 비상구조대 역할을 하는 게 배관청소업체다. 위층 가구들이 변기를 사용하거나 하수를 버리면 그 물들이 계속 아랫집 바닥에 솟구쳐 들어오게 되므로 관리사무소는 신속하게 구내방송을 통해 모든 물의 사용을 중지하도록 해당 라인의 각 가정에 통보하고 배관청소업체에 출동을 요청한다. 그래서 이들의 별칭이 ‘파이프라인의 119’다. 

▲ 음식물과 기름이 엉겨 붙어 배관을 가득 메운 상태
▲ 청소 중 배관에서 떨어져 나온 이물질들

새해 들어 매서운 한파가 몰아치던 이달 초. 횡주관 청소업체 ‘진진(대표 안현모)’의 협조를 얻어 배관 역류사고가 발생한 아파트 현장을 동행 취재했다.
‘진진’ 안현모 대표와 직원 2명이 달려간 곳은 인천의 모 아파트. 3층 가구 싱크대에서 갑자기 하수가 역류해 올라온다는 관리사무소의 다급한 전화를 받고 곧바로 장비와 작업복을 챙겨 차에 올랐다. 보통 1층과 2층 가구의 하수·오수관은 해당 라인의 수직관에 연결하지 않고 별도로 파이프를 뽑아 대형 메인 횡주관에 직접 연결한다. 그렇지 않으면 1, 2층 가구에 대형 역류사고가 빈번하게 일어날 위험성이 매우 크기 때문이다.
현장에 도착하니 관리사무소장과 기사가 막힌 배관을 알려줬지만 정확하게 어느 부분이 막혔는지는 알 수없는 상태. 직원들에게 작업준비를 지시한 안 대표가 곧바로 역류가구로 올라갔다. 싱크대와 연결하수관 위치를 머릿속에 그려둔 상태에서 다시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간 안 대표는 위치를 지목했다. 보이지도 않는 배관의 막힌 위치를 어떻게 맞출 수 있는지 물어봤다. 대답은 ‘감’이란다. 그 이상은 영업비밀이라고 했다.

안 대표가 지목한 위치에 사다리를 놓고 올라간 직원들이 보온재와 테이프를 벗겨내고 몇 번 두드려 보더니 그라인더로 PVC 파이프에 큼직한 사각형의 구멍을 내고 배관을 열었다. 이 작업을 일명 ‘뽕따기’라 부른다. 배관 안쪽은 예상대로 각종 음식물과 기름찌꺼기가 뭉쳐, 딱딱한 돌처럼 굳은 상태로 가득 차 있었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폭파작업 돌입이다.(직원들은 막힌 배관을 뚫고 굳은 이물질을 제거하는 작업을 ‘폭파’라고 불렀다.)
굵은 호스와 연결된 금속 재질의 노즐을 집어넣고 신호를 보내자 트럭에 실린 육중한 장비가 굉음과 함께 돌아가며 곧바로 물을 펌프질하기 시작했다. 배관 위에 올라탄 직원이 천천히 호스를 놓아주자 뒤로 물을 뿜어내는 노즐이 물의 추진력을 이용해 앞으로 전진해 나간다. 안 대표는 주차장 바닥에서 배관을 올려다보고, 소리를 따라가며 무전기로 “오른쪽” “왼쪽” “뒤로” 등 신호를 보냈다. 노즐은 신기하게도 안 대표의 지시와 직원의 손조작에 의해 시키는 대로 길을 찾아 움직인다. 마치 로봇처럼 파이프 안쪽을 청소하며 돌아다녔다. 
어느덧 두 시간여가 흘렀다. 안 대표에게 잠시 쉬자고 제안했으나 “요즘처럼 추운 날씨에 물이 가득 찬 장비를 밖에 세워두면 순식간에 얼어붙어 고장 날 수 있다”며 작업을 강행했다.
한 시간이 더 지나서야 배관 청소를 마친 작업자들은 같은 재질의 파이프를 잘라 실리콘을 바르고 ‘뽕따기’한 곳을 덮은 후 2개의 금속밴드로 밀봉했다. 여기에 보온재와 테이프를 새로 감아주고 나서야 비로소 전체 작업이 마무리됐다.

▲ 청소를 마치고 슬러지가 모두 제거된 배관 내부

하지만 작업을 마친 후에도 안 대표는 분주했다. 청소 시작부터 끝까지 중간 중간에 사진을 찍은 그는 파이프에서 빼낸 딱딱한 덩어리들의 사진까지 찍은 후에, 그것들을 폐기하고 최종적으로 바닥까지 청소했다.
일부 부실업체들은 배관 내 이물질을 완전히 제거하지 않고, 물이 빠질 정도의 구멍만 뚫어주는 경우가 있어 얼마 못 가 다시 막히는 일이 빈번하게 벌어지기 때문에 이렇게 꺼낸 덩어리들을 사진으로 찍고 깔끔하게 비어 있는 배관 안쪽까지 증거사진으로 보여줘야 의뢰인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생활방식에 따라 막힘 상태나 빈도에 차이가 있을까? 그렇다. 한 라인에 삼겹살이나 갈비찜 등 기름기가 많은 고기류를 자주 조리하는 집들이 몰려 있으면 배관이 자주 막힌다고 한다. 요즘과 같은 명절연휴 전후가 특히 요주의 기간이다. 안 대표는 또 “특히 음식물쓰레기를 분쇄해서 하수구로 배출해 버리는 ‘디스포저’를 사용할 경우 배관이 훨씬 더 심하게 막힌다”며 “이런 음식물찌꺼기와 기름이 만나 배관에 달라붙으면 쉽게 고체상태로 굳어버리기 때문에 작업시간도 더 오래 걸린다”고 설명한다.
그는 또 “변기와 연결되는 오수관의 경우 일반 분뇨로 인해 막히는 경우는 별로 없고, 생리대나 콘돔 등을 휴지에 뭉쳐서 버리면 물에 용해되지 않아 자주 막히게 된다”며 “하수관이든 오수관이든 정해진 용도대로 써야 불필요한 비용 지출을 막고, 시설물을 더 오래, 더 효율적으로, 더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작업복을 벗고 따뜻한 캔커피를 따는데 갑자기 그의 전화벨이 울렸다. 또 어딘가의 하수가 역류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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