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논단

 

최근 서울신문과 비영리 공공조사 네트워크 ‘공공의창’이 타임리서치에 의뢰해 전국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여론 조사를 실시한 바 있다. 그 결과가 매우 흥미롭다. 이 조사에 따르면 76%가 자기가 살고 있는 집에 따라 사회·경제적 계급이 나뉜다고 답했다. 
일반인에게는 주택을 통해 계급이 형성된다는 ‘주택계급’이라는 개념은 매우 생소하다. 학술적으로 주택계급 개념은 독일의 저명한 사회학자인 막스베버(Max Weber)의 사회계급론에서 나왔다고 판단된다. 베버는 “재산의 소유와 비소유가 모든 계급의 위치를 결정하는 기본요건”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리고 이러한 계급은 갈등집단으로 파악하기도 한다. 
베버는 사회 계급을 재산, 명성 및 권력의 세 가지 구성 요소로 설명한다. 재산, 명성 그리고 권력은 직·간접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성을 지니기도 한다. 한국사회에서 주택이 사회계급 혹은 사회계층을 구분하고 결정짓는 매우 중요한 요소라는 것은 아래 몇 가지 사항에서 밝혀지고 있다.
특정지역의 고가주택은 거주자의 재산 정도와 명성, 그리고 권력을 상징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서울 강남지역 고가 아파트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한국 주택계급의 상층부를 형성하고 있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서울 강남의 아파트 평당 가격이 1억원에 육박했다. 국토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서초구 반포동 아크로리버파크(전용면적 59.95㎡)는 2019년 8월에 23억9,800만원에 거래됐다. 3.3㎡당 9,992만원으로 사실상 강남 아파트 ‘평당 1억원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지난해 수억 원씩 폭등했던 서울 강남3구(강남·서초·송파)와 용산구의 초고가 아파트 시장이 갭 투기판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금수저’로 불리는 젊은이들이 20억~30억원 고가 아파트를 은행 대출 없이 사들였다. 이들 아파트는 1년이 못 가 수억원씩 가격이 상승했다. 갭 투자는 엄청난 부를 축적하는 계기가 된 것이다. 얼마 전 정부가 시세 15억원 초과 아파트에 대한 주택담보대출을 전면 금지했다. 그러나 자금력이 충분한 갭투자가들에게는 정부 대책이 별로 효력이 없어 보인다. 
일반 서민들은 이러한 고급 고가 아파트 거주자들은 재산과 명성, 그리고 권력을 지닌 계층의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한편 한국사회는 주거 빈곤층이 수없이 많이 존재한다. 정부가 정한 주택최저기준에 미달하는 가구 수가 전국적으로 114만 가구(2017년 현재)다. 그리고 정상 주거시설이 아닌 곳에 거주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국토부 자료에 따르면 주택 이외의 거처 주거실태조사 결과 36만9,501가구가 주택이 아닌 곳에 거주하고 있다. 이들 중 고시원 거주 비중이 가장 높고(41.0%), 일터의 일부 공간과 다중이용 업소 14만4,000가구(39.0%), 숙박업소의 객실 3만가구(8.2%), 판잣집·비닐하우스 7,000가구(1.8%)로 밝혀졌다.
한편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1인 가구 비중이 높은 35세 미만의 청년층과 65세 이상의 노년층의 주거 빈곤율이 높게 나타난다. 여기서 주거 빈곤의 기준은 최저주거기준에 미달하면서도 월 소득 대비 월임대료(RIR)가 20% 이상인 경우로 규정하고 있다. 특히 노년층의 경우 OECD 국가의 평균 노인 빈곤율이 13%인데 한국의 노인 빈곤율은 62% (2014년)에 달한다. 많은 노인들이 주거 빈곤에 시달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문제는 노인가구의 비중이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전체 가구 중 노인가구 비중이 2010년 17.8%였으나 2030년에는 35.4%로 예상하고 있다.
한국사회는 과거에 비해 주거수준이 많이 향상되고 있지만 주택을 통한 새로운 사회계급이 형성되고 있다. 거주하는 동네(지역), 주택 형태(아파트 혹은 단독, 다세대, 다가구주택), 점유형태(자가 혹은 임대), 주택가격 등은 현대판 호패처럼 작용하고 있다. 주택을 통한 새로운 사회계급의 형성이 양극화와 불평등을 증폭시키는 불쏘시개가 될까 염려된다. 
우리나라 헌법 제35조는 국가는 모든 국민이 쾌적한 주거생활을 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모든 국민이 쾌적한 주거생활을 누릴 수 있도록 새로운 접근이 요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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