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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무 아파트의 입주자 한 분이 화분 하나를 놓고 간다면서 전화가 왔다. 외부 일정이 있어 잠시 사무실을 나왔는데, 그사이 다녀가는 모양이다. 집에서 식물 키우는 게 취미라는 그분은 요즘 칼랑코에라는 식물에 푹 빠져 있다고 했다. 꺾꽂이해도 잘 살고, 종류도 다양하고, 꽃도 잘 피워서 키우는 재미가 있다고 했다. 언젠가 한 번 기회가 되면 자신이 키운 칼랑코에를 분양해 줄 수 있다고 했는데, 그 언젠가가 오늘인가 보다. 도대체 어떤 꽃이기에 그렇게 예찬론을 펼쳤는지 궁금하다. 자연스레 움직임이 빨라졌다. 책상 위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화분은 생각보다 훨씬 예쁜 모습이었다. 진홍색 꽃잎이 요염한 듯, 새초롬한 듯, 그러면서도 화려한 제 모습을 잘 알고 있다는 듯, 당당하게 피어 있었다. 어쩜 이리도 잘 컸는지 대견스럽기까지 하다. 책상 위가 갑자기 화사해졌다. 그러고 보니 그동안 사무실 안에 화분 숫자가 꽤 늘었다. 모양도 크기도 가지각색이다. 주먹만 한 화분에 이파리 한두 장 걸쳐져 있는 다육식물도 있고, 움직이기 힘들 정도로 큰 화분에 고무나무 같은 것이 심겨 있는 것들도 있다. 버려진 화분을 주워다가 죽어가는 식물을 살려낸 것도 있고, 분갈이가 시급한 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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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미
호수 1358
2024.04.15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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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장기수선충당금 사용이 늘어나 적립액을 증액할 필요가 있어 안건으로 상정했으니 적극 검토해 주십시오.” “장기수선계획에 따른 소요예산에 맞추려면 세대 부과액을 좀 더 올려야 하지 않을까요?” 얼마 전 입주자대표회의에서 장충금 적립에 대해 논의한 요지다. 우리 아파트는 준공 13년 차에 들어서면서 이곳저곳 보수할 부분이 드러나 지난해 9월에 장기수선계획을 종합적으로 조정했다. 아파트의 주요시설물에 대해 내구연수(耐久年數) 및 법정 수선·교체주기에 다다른 설비와 장치를 점검하고, 이들의 수선예정연도와 수선방법 등의 적정성을 검토한 후 그에 따른 장충금의 사용처 및 세대별 부과액을 확정하는 절차다.장기수선계획서 수립은 법정사항이다. 즉 입대의와 관리주체는 공동주택관리법 제29조 제2항에 따라 장기수선계획을 3년마다 검토해야 한다. 3년이 되기 전에 조정이 필요한 경우에는 입주자(소유자) 과반수의 동의를 받아 수시조정을 진행할 수 있다. 이때 주요시설의 교체나 수선 내용에 대해서는 기술적인 판단이 요구되므로 전문업체의 자문을 받아서 수립한다.필자는 장기수선계획 조정에 앞서 관리사무소장이 주요시설물의 노후 상태를 꼼꼼히 점검토록 했다. 대상은 건물외부(옥상·외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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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호
호수 1356
2024.04.05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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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아파트 관리비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 중 하나가 장기수선충당금이다. 관리비 항목 중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있겠는가마는, 특히 장충금은 아파트의 안전과 기능을 유지하는 데 가장 필요한 비용이다. 이 때문에 쉽게 줄일 수도 없다. 더군다나 관련법으로 부담 시기부터 부담 대상자, 사용에 대한 절차까지 세세하게 정해 놓고 있어 그 중요성이 더욱 대두되는 항목이다. 그럼에도 당장 관리비를 부담하는 입주자 입장에서는 우선순위가 밀리는 항목이기도 하다. 입주 후 1년이 경과되는 시점부터 장충금을 적립하도록 법으로 정해져 있다. 하지만 이제 막 입주한 새 아파트에서는 앞으로 10년, 20년 뒤에 발생할 비용 부담의 필요성이 현실적으로 와 닿지 않는다. 이 때문에 입주 초기에는 대부분 최저금액의 장충금이 부과되도록 관련 규정을 만들어 놓고 있는 게 현실이다. 그런 후유증이랄까. 그 피해는 고스란히 오래된 아파트 입주자들에게 돌아간다. 그동안 아파트 외부 도색 몇 번 칠한 게 전부인 것 같은데, 노후한 시설물 하나 교체하려고 할 때마다 그 많던 장충금은 다 어디로 사라져 버린 것인지 통장이 텅 빈 느낌이다. 부랴부랴 교체 주기를 뒤로 미루거나, 장충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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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미
호수 1354
2024.03.20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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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비는 입주민의 피와 땀의 각출물이요. 어찌 그리 아낌없이 펑펑 쓰는 것이오. 지금 즉시 정문 트리 전원을 끄고 철거하시오. 주인 의식 없이 어찌 그 자리에 앉아 있소.” 새해 초 아파트 관리사무소장이 출근해 보니 팩스가 한 장 들어와 있다고 사진을 찍어 필자에게 알려온 문건을 그대로 옮긴 글이다. A4 용지에 20포인트 크기의 한글 8줄이 인쇄돼 있다. 발신자가 명시돼 있지 않고 하단에 “from:○○○○”라고 ID가 적힌 것으로 봐서 인터넷 팩스를 사용한 것 같다.필자의 아파트 단지는 연례행사로 연말연시를 입주민 모두가 기쁘게 지내자는 뜻으로 단지 정문 입구에 크리스마스트리 조명을 켜 놓는다. 트리 조명은 총 8개 화분에 심어진 약 1m 높이 측백나무에 소형LED를 장식한 것이다. 12월 15일부터 새해 1월 15일까지 한 달 동안 야간에만 켜놓는 것인데, 이를 두고 누군가가 전기료 낭비라고 지적한 것이다.필자는 이런 경위를 아파트 단톡방에 올렸다. 오늘 아침 관리사무소에 팩스 문건이 수신됐는데 일부 입주민도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겠다고 판단해서 짤막하게 공지한다고 먼저 안내했다. 이어 트리 조명의 전기료는 한 달간 3만 원 정도인데 아파트의 아름다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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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호 입대의 회장 광교산그대가Forest아파트
호수 1352
2024.03.08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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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놀이터는 평소 내가 자주 돌아보는 곳 중 하나다. 컴퓨터 화면을 오랫동안 들여다보느라 눈이 뻑뻑해질 때, 풀리지 않는 문제를 두고 고심하다 머릿속에 신선한 산소 주입이 필요하다 싶을 때 무심코 향하는 곳이 놀이터다. 물론 아파트 단지를 한 바퀴 돌아볼 때도 빠지지 않는 코스다. 조합 놀이대 하나와 그네 둘, 그 옆으로 조그만 흔들의자와 시소들이 적당한 간격을 유지한 채 설치된 놀이터는 깔끔하다. 뒤늦게 떨어진 나뭇잎 몇 개가 바닥에 포복해 있고, 겨울이 맞나 싶을 정도로 흐드러지게 핀 애기동백꽃 이파리가 붉게 떨어져 있는 것을 제외하곤 휴지 하나, 돌멩이 하나 없다. 아침마다 미화원들과 경비원들의 부지런함으로 유지되는 깔끔함이다. 하릴없이 조합 놀이대에 손을 올려 나사를 돌려본다. 내 손가락 힘으로는 한 치의 헐거움도 없이 단단하게 조여져 있다. 손끝에서 느껴지는 나사들의 야무짐이 든든하다. ‘그래 이 정도는 돼야지.’ 보는 사람도 없는데 혼자 고개를 끄덕이며 발길을 옮긴다. 오늘은 특별히 놀이터 안전 수칙을 확인해야 한다. 안전 수칙 안내판의 위치가 사람들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이라는 민원이 있어서다. 안전 수칙에는 분명히 ‘10세 이하 어린이만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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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미
호수 1350
2024.02.19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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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층간소음이 덜한 아파트라고 알고 이사 왔는데 이웃을 잘못 만났나 봐요. 주말이면 윗집 아이들 뛰어노는 소리에 잠을 설치는 날이 많아요.” 얼마 전 만난 입주민의 하소연이다. 우리 아파트는 바닥에 완충재를 적용한 공법으로 시공됐고 층고도 높은 편이라 소음이 덜하다. 그래도 위층에서 심하게 바닥을 울려대면 아래층은 쿵쿵거리는 소음을 들을 수밖에 없다.층간소음은 실내 활동 비중이 높은 겨울철에 많이 발생하고 민원도 집중된다. 환경부에 따르면 지난 5년간 층간소음이웃사이센터에 접수된 민원은 여름철에 연평균 7008건이지만 겨울철에는 1만746건으로 여름보다 5.3%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층간소음 원인 중 1위가 뛰거나 걷는 동작에서 발생하는 이른바 ‘발 망치’ 소음(67.7%)인 것으로 집계됐다.아파트마다 층간소음으로 갈등을 겪는 사례도 다양하다. 한국아파트신문에도 층간소음으로 인한 이웃 간의 다툼이 욕설로 시작돼 폭행으로 비화되는 사건이 심심치 않게 알려진다. 얼마 전 대법원은 이웃을 겨냥해 소음을 반복해서 일으키는 것이 ‘스토킹 범죄’에 해당한다고 판결했다. 인터넷에는 층간소음 복수 방법까지 소개된다고 한다. 상대방에게 보복하게 되면 더 강한 보복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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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호
호수 1348
2024.01.30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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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을 마무리하는 분위기는 시끌벅적했다. 간간이 겨울비가 내리는 가운데 수많은 차량이 제주도의회 주차장으로 밀려들었고, 대회의실 앞 로비에서부터 사람들이 넘쳐났다. 약간은 상기된 얼굴과 들뜬 표정을 한 사람들이 한 아름 꽃다발을 들고 오갔다. 성장을 한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로비 한 쪽에 마련된 아나바다 장터 물건을 구경하기도 했다. ‘2023년 제주특별자치도의회 송년 나눔의 날’ 행사 진행을 준비하는 사람들은 마이크 음량을 시험하는가 하면 참석한 사람들의 명단을 확인하며 자리를 정돈하느라 바쁘게 움직였다. 약간은 어정쩡한 기분으로 꽉꽉 들어찬 사람들 가운데 아는 얼굴을 찾았다. 직원 중 한 명이 오늘 제주도의회 표창을 받는 날이다. 먼저 도착했다는 직원과 또 다른 직원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오늘 직원 표창을 축하해주기 위해 입주자대표회의 회장이 참석한다고 했는데, 이 많은 사람 중에 그들을 찾는 건 불가능했다. 할 수 없이 식이 거행되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드디어 거행되는 식. 여러 사람이 2023년을 보내는 소회와 내년을 기약하는 말들을 전하고 나서 한 명 한 명 수상자 이름이 불리기 시작했다. 남녀노소를 불문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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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미
호수 1346
2024.01.19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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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아파트는 이름부터 정말 화려하다. 얼마 전 부산에 사는 친구와 통화했는데 ‘힐스테이트 센텀 더퍼스트시티’로 이사했단다. 무슨 이름이냐고 재차 물었더니 자기도 이제 겨우 외워서 말한다는 응답이다. 친구 덕분에 ‘센텀’이 라틴어로 100(백)이라는 의미도 알게 됐다.아파트 이름에 외국어를 넣는 게 유행이다. 강이나 호수를 전망할 수 있으면 ‘리버’나 ‘레이크’, 인근에 공원이나 숲이 있으면 ‘파크’나 ‘포레’, 또 곁에 있다고 해서 ‘사이드’고 보이면 ‘뷰’를 붙인다. 그리고 고급이라는 뜻으로 ‘퍼스트, 골드, 로얄, 노블’과 같은 단어도 곁들인다.여기에 지역명과 건설사 브랜드 및 단지 개성을 강조하는 ‘펫네임(애칭)’까지 넣으니 아파트 이름이 점점 길어진다. 인터넷에서 가장 긴 이름을 검색해 보니 ‘광주전남 공동혁신도시 빛가람 대방엘리움 로얄카운티’ 아파트로 무려 23자나 된다. 주택조합이나 입주민들이 고급스러운 이름을 원하기 때문에 시공사에서는 독창적인 명칭을 만들려고 사내공모까지 한단다. 기존 아파트에서도 입주민들이 단지명 ‘개명(改名)’에 나선다는 뉴스가 한국아파트신문에 가끔 보도된다.외국어 이름이라야 아파트 가격이 높아질 수 있다니 허세가 약간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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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호
호수 1344
2023.12.30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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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화단에 갓난아기 머리통만 한 모과가 하나 떨어져 뒹굴고 있다. 다가가 보니 달콤한 냄새를 맡은 개미들이 먼저 와서 구멍을 내고 있었다. 살살 개미들을 떨어뜨려 놓고 주워들었다. 군데군데 썩어들어가기 시작했다. 여름내 무슨 문제가 있었는지 과일 표면에 얽힌 자국들이 가득하다. 제법 묵직한 게 여름내 햇빛을 단단히 머금고 잘 익은 것 같다. 손으로 잡기만 했는데 벌써 모과 향이 주변에 가득하다. 고개를 들어보니 아직 떨어지지 않은 모과 하나가 나뭇가지에 걸려 있다. 발돋움해 가며 애써 하나 남은 모과를 땄다. 떨어져 있던 모과보다 상태가 더 낫다. 상처도 덜 나고, 썩은 부분도 없다. 두 개를 들고 관리사무소로 들어왔다. 잘게 썰어 설탕에 재워놓으면 겨우내 직원들이랑 향긋한 모과차를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아파트 단지에 모과나무가 꽤 여러 그루 있다. 모과나무는 열매만 좋은 게 아니다. 봄에 꽃을 피우기 시작하면 볼만하다. 가을 지나 겨울까지 모과 익어가는 모습도 좋다. 향기 또한 두말할 필요가 없다. 모과 익어가는 늦가을이면 근처에만 가도 모과 향이 향긋하게 풍겨온다. 모과나무 습성상 새순은 하늘 높은 줄만 알고 옆으로 뻗지는 않는다. 한 번 돋아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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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미
호수 1342
2023.12.20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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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사님들, 새로 단장한 휴게실 어떠세요?”“예, 쉬는 시간에 편히 이용하고 있어요. 고맙습니다.” “제가 진작에 살폈어야 하는 건데 이제야 고쳐드리게 돼서 죄송합니다. 혹시 불편하시거나 부족한 거 있으시면 관리사무소에 말씀해 주세요.” 얼마 전에 아파트 미화원분들을 단지 내에서 우연히 만나 잠시 주고받은 대화다. 실은 지난 9월에 우리 아파트의 미화원 휴게실을 옮기고 내부 편의시설도 구비해 새로 단장했다. 우리 아파트 단지는 입주 초에 미화원 휴게실을 지하 공간에 둬 바로 옆에서 물걸레 세탁도 하며 작업 동선을 줄일 수 있도록 배치했다. 그런데 휴게실 환경으로 보면 늘 습한 데다 환기도 쉽지 않아 만족도가 낮을 수밖에 없었다. 필자는 올여름에야 비로소 미화원 휴게실을 둘러보고, 관리사무소장에게 휴게실 개선을 8월 입대의 정기회의 안건으로 상정하도록 요청했다. 그리고 미화원분들의 의견을 들어가며 공사를 진행하도록 한 결과, 이전보다 훨씬 깔끔하고 쾌적한 휴게 공간이 만들어졌다.마침 지난해 개정된 산업안전보건법이 1년 유예기간을 거쳐 8월 18일부터 전면 시행됐다. 아파트 경비원, 청소원·환경미화원 등 7개 직종의 근로자가 2인 이상이면서 상시근로자 10명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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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호
호수 1340
2023.12.08 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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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밥을 왜 하필이면 우리 집 앞에다 놓냐고요!”아파트 관리사무소 문을 열고 들어서자 하이톤 목소리가 나를 맞는다. 하루 업무를 시작하기 전, 조용하게 차 한 잔 들 시간이 여지없이 부서지고 있다. 더 이상의 설명 없이도 상황은 뻔하다. 고양이와의 숨바꼭질 문제다. 어지간하면 참고 넘기려던 입주자의 인내심이 바닥이 났다고 했다. 얼마 전 새로 뽑은 승용차 보닛 위에 날카로운 고양이 발톱이 생긴 걸 발견하면서다. “제가요. 밤마다 창문 앞에서 울어대는 고양이를 봐도 참았어요. 아침에 출근할 때마다 자동차 아래 있던 고양이 때문에 놀란 적이 한두 번이 아닌데 그것도 참았어요. 세차한 차 위에 고양이 발자국이 보란 듯이 찍혀 있는 것도 참았다고요. 근데, 엊그제 나온 새 차를 긁어 놓았다고요. 이것까지는 참을 수 없는 거잖아요? 소장님이라면 참을 수 있겠어요?”묵묵부답으로 서 있는 관리직원들에게 했던 이야기를 입주자는 가방도 내려놓지 못한 나를 두고 다시 리바이벌 중이다. 입주자의 하소연이 길어질수록 나의 입은 열리지 않는다. 할 수 있는 말이 없다. 입주자의 입장은 이해하고도 남는다. 발정기 때 고양이 울음소리는 아기 울음소리와 흡사하다. 한밤중 잠결에 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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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미
호수 1338
2023.11.2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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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말씀하신 내용은 동대표님 의견이신가요? 아니면 개인 생각이신가요?” “이 안건에 대해 A동 입주민들 의견은 어떠한지 들어보고 발언하시는 건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얼마 전 입주자대표회의에서 동대표들 간에 의견이 엇갈리는 부분이 있었다. 나는 회의 의장으로서 안건의 취지를 명확히 공감하려고 이렇게 따져 물었다.입대의에서는 서로 의견이 다른 사안을 둘러싸고 논쟁이 일어날 수 있다. 그야말로 입주민의 대표자로서 의견을 강하게 제시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자기주장을 너무 강하게 내세우다 보면 그것이 동대표로서의 의견인지 아니면 개인적인 의견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상황에 이르게 된다. 만일 어떤 동대표가 입주민 한 사람으로서 의견을 낼 수도 있지 않느냐고 거듭 주장한다면 회의 진행이 더 혼란스러워질 수 있다.입대의가 입주민 의사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함으로써 갈등을 빚는 사례도 다양하다. 한국아파트신문에 보도되듯이 입대의가 일부 구성원의 개인적 이해관계에 집착함으로써 입주민들로부터 불신을 받기도 한다. 또 입대의 내에서도 회장의 독선이나 독단적인 의사진행으로 동대표들과 언쟁하는 일도 생긴다. 동대표 가운데 특정업자의 이권이 개입한 정황이 알려져 파경에 이르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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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호
호수 1336
2023.11.07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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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에 만들어진 모든 공간이 입주자들의 생활에 다 유용한 건 아니다. 아무리 최고의 설계자들이 입주자들의 생활 패턴이나 취향을 분석하며 아파트를 설계한다 하더라도 생활하다 보면 도대체 이 공간은 무얼 위해서 만들어 놓았는지 전혀 이해되지 않는 곳이 있게 마련이다. 최신식 시설과 인공지능적 설계를 갖춘 아파트라고 해도 예외는 아니다. 헬스장과 골프연습장이 있는 주민공동시설은 지하에 있었다. 완전히 지하로만 만들기에는 부담스러웠는지 한쪽을 터서 광장을 만들고 지상과 연결해 놓았다. 하늘을 선큰으로 가리고 광장 둘레에 돌아가면서 화단을 만들어 놓았는데 처음 입주할 때는 색색의 인공토를 깔고 꽃들을 심어 놓아 더할 나위 없는 아름다운 장소였다. 마치 대형 백화점 갤러리를 연상케 했다. 분위기를 더하는 벤치들이 듬성듬성 자리를 잡고 있어 커피 하나 들고 앉아 있으면 세상 여유가 다 몰려들 것 같은 분위기였다. 그러나 그런 분위기는 6개월을 넘기기 어려웠다. 빗물도 들지 않고, 햇빛도 들지 않고, 거기다 인공토는 조금만 메말라도 부석거리며 공중비행을 하면서 화단에서 탈출하기가 예사였다. 관리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중에서도 한쪽 화단은 유독 습기도 많고, 햇빛도 전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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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미
호수 1334
2023.10.24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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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적으로 주택관리사 ‘보’자는 3년 경력이 채워지면 뗀다. 하지만 실무적으로 봤을 때는 도색 공사를 해보고, 동대표 선거도 한번은 치러보고, 위탁관리 재계약도 한번은 해봐야 실제로 ‘보’자를 떼는 것 같다. 왜냐하면 이때 관리사무소장들이 잘 걸려 넘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위 3가지를 포괄하는 중요한 한 가지가 더 있다. 엉뚱한 이유로 억지 소란을 피우는 동대표들이나 막장 입주민들을 잘 극복해서 맷집이 몸에 붙었을 때 정말로 ‘보’ 딱지를 떼는 것 같다. A소장은 억지 소란과 막말 공세에 시달리면서 많이 힘들어했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는 말이 딱 맞다. 전 동대표와 현재 동대표와의 싸움에서 A소장의 등이 터질 상황이 됐다. 이쪽 편에서는 소장은 저쪽 편이라고 구체적인 근거도 없이 험한 말을 해댔다. 저쪽 편에서는 관리소장은 이쪽 편이라고 허황되게 큰소리를 질러댔다. ‘어떤 상황에서도 침착한 목소리 톤과 볼륨을 유지하라. 소리를 지르는 건 이성을 잃었다는 표시며, 스스로가 패배를 인정하는 꼴이 된다.’ 이런 관리업무 루틴을 갖고 있던 A소장은 루틴대로 소란을 차분하고 침착하게 수습하려고 애썼다.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소란을 피우는 사람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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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식 주택관리사
호수 1333
2023.10.17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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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A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 회장입니다.” 얼마 전에 동네 주민자치회에서 옆자리에 앉은 분으로부터 인사와 함께 명함을 건네받았다. 필자도 얼굴을 마주보며 “반갑습니다. 광교산그대가 입대의 회장 김정호입니다”하고 인사했다.“김 회장님, 명함 하나 주시죠.” “아, 저는 명함을 만들지 않아 드리지 못하네요.” 상대방이 명함을 달라는데 건네지 못해 죄송한 일이 됐다. 실은 필자도 입대의 회장에 취임하면서 관리사무소장으로부터 명함을 만들라는 권유를 받았다. 그러나 입대의 회장이 비즈니스를 하는 것도 아니고 대외활동이 많을 것 같지도 않아 명함 제작을 사양했었다. 그런데 지난 3년여 동안 여러 사람을 만나다 보니 아파트 홍보를 위해서도 명함을 갖고 다니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든다.입대의 회장의 대외활동은 본인의 역량과 관심사에 따라 차이가 있을 것이다. 대체로 아파트와 관련된 민원사항을 해결하기 위해 행정기관이나 유관단체 등에 대표자로 나서는 일이다. 공식적으로 입대의는 입주민을 대리하는 비법인 사단(社團)이고, 회장은 입주민들을 대표하는 신분이다. 혹여나 대외적으로 다툼이 발생하는 경우 입대의 회장이 입주민들의 공동이익을 위한 대리권(代理權)을 행사할 수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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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호
호수 1332
2023.10.07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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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 운전하다 보면 횡단보도를 건너는 사람이 잘 안 보여 깜짝깜짝 놀라게 되는 경우가 있다. 자칫 과속하거나 잠깐 한눈이라도 팔게 되면 사고로 이어지게 되는 아찔한 경험도 자주 하게 된다. 길을 건너는 사람이 잘 보이도록 횡단보도만이라도 비춰주는 가로등이 있으면 좋을 텐데. 사람들의 이러한 요구사항을 수집해 설치된 것이 횡단보도용 가로등이다. 우리 아파트 정문 앞에도 횡단보도를 비추는 가로등이 설치됐다. 아파트 앞 도로는 우리 아파트로 들어오는 입구와 맞은편 아파트로 들어가는 입구가 서로 마주 보고 있어 엇갈린 듯한 사거리가 형성돼 있고, 바로 앞에 초등학교가 있어 차량 흐름이 그리 심플한 편은 아니다. 더군다나 울창한 가로수들이 밤이 되면 가로등 불빛을 일부 가리기도 해서 아무리 서행한다고 해도 어디서 어떻게 사람이 튀어나올지 안심이 되지 않는다. 그러던 중 횡단보도를 집중 조명하는 가로등이 설치됐으니 이제 그런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터였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취지와 목적을 가진 일이라도 모두에게 다 좋을 수는 없기 마련이다. 횡단보도에 설치된 LED 전등 불빛 때문에 밤에 잠을 잘 수 없다는 입주민들의 호소가 이어졌다. 관리사무소에 아무리 민원을 넣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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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미
호수 1329
2023.09.12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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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층간소음관리위원회를 구성하셨다고요?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까요?”“상설기구로 설치했으니 우선은 입주민들에게 층간소음에 대한 계몽 효과가 있을 것이고, 갈등 조정에 대해서도 조금은 도움이 될 수 있을 겁니다.” 지난 7월 우리 아파트에 층관위를 새로 구성하면서 전임 입주자대표회의 회장과 나눈 대화다.요즘 층관위를 구성하는 아파트 단지가 많다. 국토교통부가 지난해 8월 ‘공동주택 층간소음 개선방안’을 발표하고 500세대 이상의 공동주택 단지에 층관위 설치를 의무화했기 때문이다. 층간소음 갈등이 사회 문제로 대두될 만큼 심각해져 정부가 나선 것이다. 대책은 △기축주택은 층간소음 성능 보강 및 입주민들의 자율적 갈등 해결을 촉진하고 △신축주택은 사후확인 제도를 활용해 고품질 주택을 확대하는 것이 주요 골자다. 이를 위한 관련법률 개정안은 현재 국회 계류 중이다.기존 아파트의 층간소음 대책 중 사전예방 대책은 소음의 원인을 제거하거나 저감하는 것이다. 전 세대에 안내문이나 구내방송을 통해 층간소음이 발생하지 않도록 계도하면서 소음 발생이 심한 세대에 대해서는 소음저감매트 설치 등을 권고한다.사후관리는 층간소음에 따른 이웃 간의 갈등이 원만히 해소되도록 관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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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호
호수 1328
2023.09.06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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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의 일이다. 한 직원이 아파트 누수 문제로 세대 안을 확인 중 쓰레기가 가득 차 있는 것을 보고 놀랐다고 했다.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려고 여러 차례 방문했으나 안에 사람이 있는데도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그렇게 한동안 시간이 흘렀다. 장마철이 됐고 비가 오는 날이 많아지자 관리사무소 전화통에 불이 났다. 바퀴벌레가 말도 못 하게 많다는 민원이었다. 아차 싶었다. 쓰레기가 가득하다던 그 집이 떠올랐다. 직원과 함께 소방점검을 핑계로 그 집 문을 두드렸다.“관리사무소입니다. 소방점검 왔습니다.” 문을 여러 번 두드렸지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살짝 열려있는 창문으로 쿰쿰한 냄새가 흘러나왔다. 무심결에 문손잡이를 잡았다. 문은 잠겨 있지 않았다. 살짝 열린 문으로 놀란 얼굴의 여성이 나왔다. “오늘은 안되니 다음에 하자”고 한다. 문 사이로 보이는 집안은 쓰레기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녀 앞에서 인상을 찌푸릴 수도 없었고 코를 막을 수도 없었다.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약속 날짜를 잡고 돌아 왔다.고민 끝에 통장에게 전화해 사정 이야기를 했다. 행정복지센터 직원이 전화해 약속 날짜에 함께 가자고 한다. ‘아, 잘됐다. 전문가들과 함께 가니 뭐라도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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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순 관리사무소장
호수 1326
2023.08.22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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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장님, 오늘 결재하실 서류가 있습니다.” “이런 사항은 소장님 전결로 처리해도 되지 않을까요?” “이번 정기회의 전에 선지출 회계처리 해둬야 할 서류입니다.” 필자는 매주 월요일 아파트 관리사무소장과 미팅을 갖는다. 이때 입주자대표회의 회장으로서 챙겨 봐야 할 문건들을 결재 처리한다. 특별히 유념할 사안에 대해서는 관리직원들과 문답을 나눈다.입대의 회장으로서 결재 서류가 많다고 하면 많은 편이다. 각종 지출결의서를 비롯해 용역계약서, 공동시설 점검서류, 외부발송·접수 공문 등등. 그래서 규모가 큰 아파트 단지에서는 입대의 회장이 관리사무소에 출근하다시피 한다는 얘기도 나온다. 필자는 월요회의 때 주로 결재한다. 메신저로 소장과 사전협의하면 대면결재 시간이 절감된다.결재(決裁)의 사전적 의미는 ‘해당 행위의 책임 소재를 실무자가 아니라 결재권자에게 지우는 절차’다. 즉, 결재권자에게 책임을 넘기는 것이므로 실무자로서는 중간결재자를 여럿 둬 책임을 분산시키는 것도 하나의 요령이다.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는 담당-과장(팀장)-관리사무소장 그리고 사안에 따라 입대의 감사와 회장이 결재라인에 위치할 수 있다. 간혹 신입직원이 최상급자까지 결재선에 넣는 것을 귀찮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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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호
호수 1325
2023.08.01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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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근무하고 있는 아파트는 1998년 6월 입주를 시작했다. 벌써 사반세기가 지났다. 그러다 보니 간단한 수선만으로 해결이 불가능한 곳도 생기게 마련이고 법적인 교체 주기가 도래한 것들도 생겨났다. 이미 28대에 달하는 승강기가 교체됐으며, LPG를 LNG로 교체하는 공사도 완료됐다. 오래된 것들은 오래된 것들만의 장점이 있게 마련이다. 울창하게 자란 나무들은 아파트 곳곳에 그늘을 드리워 준다. 관리직원들과 입주자들의 손때가 묻은 놀이터, 벤치, 조형물들은 아파트의 운치를 더해 준다. 이렇게 아름답고 정겨운 아파트에 고민거리가 하나 있다. 아파트를 가로지르는 중앙도로다. 그 도로 바닥이 자꾸 패어 보수를 해봐도 그때뿐이다. 도로 전체를 걷어내고 재포장을 해야 하는데, 문제는 그 보수비용을 누가 대야 하느냐는 것. 당연히 아파트 단지 안에 있는 도로면 그 아파트 입주민들이 내야 하는 거 아니냐고 할 것인데, 그 도로를 온전히 이 아파트 입주민들만 사용하는 게 아니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지은 우리 아파트는 거의 비슷한 시기에 1단지, 2단지, 3단지를 지어 입주를 시켰다. 1단지 아파트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도로를 이용해 들어가면 그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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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미
호수 1323
2023.07.27 16: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