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청측 “부당간섭 인정되려면 위법 사항 포함돼야”
전문가 “위법에 한정하면 갑질보호법 취지 안맞아”

“부당간섭의 범위가 대체 어디까지인가요? 법의 취지는 무엇입니까?”

아파트 관리사무소장이 입주민이나 입주자대표회의로부터 업무에 대한 부당간섭 또는 방해를 받지 않도록 하는 법이 시행된 지 2년이 지났다. 하지만 조사를 맡은 지자체가 부당간섭을 지나치게 좁게 해석하는 바람에 현장에서는 ‘무용지물’이라는 평가까지 나오고 있다. 

서울 양천구 모 아파트 A소장은 지난달 26일 구청에 입대의 회장의 부당간섭에 관한 사실조사를 의뢰했다. A소장은 “지난 1월 B회장이 위탁관리업체 C사에 소장 교체를 요구했다”며 “B회장은 평소에도 직원들에게 ‘잘라버리겠다’는 말을 수시로 해왔다”고 주장했다. 

◇8개월간 소장 5명 왔다가 떠나기도

B회장은 1월 23일 C업체에 ‘입대의 회의 결과 아파트 관리소홀로 인해 소장 교체를 바란다’는 내용의 문서를 발송했다. 26일에는 ‘A소장이 아파트 단지 순찰을 매일 하지 않고 탁상행정만 한다, 각종 설비 교체 및 보수 시 현장에 와보지 않는다’는 등의 이유로 계약만료 이후 소장을 교체해달라는 내용의 문서를 재차 발송했다. 지난해 4월 1일 이 아파트에 배치된 A소장은 이달 말 계약 종료를 앞두고 있다. 

A소장은 C사에 “B회장의 말은 사실과 다르다”고 해명했다. 그는 “오히려 B회장이 직원들 회의 시간, 가로등 소등·점등 시간 등 사소한 업무까지 지나치게 간섭해 정상적으로 업무를 수행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A소장은 또 “B회장은 ‘7시 30분까지 출근해라’, ‘업무 파악을 위해 토요일에도 출근해라’ 등의 과도한 요구를 했다”며 “실제로 초반 3개월간 토요일에도 출근해 얼굴도장을 찍고 가야 했다”고 말했다. 

B회장은 관리사무소 외에 경비실에도 소장의 출퇴근 기록부를 만들어 놓고 소장에게 양쪽에 모두 출퇴근 시간을 기록하도록 했다고 한다. 경비실에 비치된 기록부에 시간 기록을 깜박하면 사고경위서를 작성해야 했다. A소장은 “직원들의 단순한 업무 실수에도 경위서 제출을 강요하고, 경위서를 세 번 쓰면 해고하겠다는 말을 공공연히 했다”고 말했다. 

A소장은 “B회장은 ‘내가 3개월에 소장을 세 번 바꾼 사람이다’, ‘당신은 소장 자격이 없다’는 등의 말로 모멸감을 느끼게 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2015년 B회장 취임 후 이듬해부터 지금까지 이 아파트를 거쳐 간 소장은 11명이나 된다. 그중 2017년 6월부터 2018년 1월 말까지 8개월간 5명의 소장이 왔다가 금세 떠나갔다. 가장 짧은 경우는 12일 근무였다. 

A소장은 여러 차례 B회장에게 공동주택관리법 제65조(부당간섭배제)와 관리규약 제24조(업무방해 금지) 위반임을 알렸으나 그럴수록 B회장과의 사이는 더욱 악화했다고 한다. 이는 관리직원에게도 불똥이 튀었다. 이 아파트 경리대리 D씨는 “B회장이 ‘소장의 일거수일투족을 보고해 줄 수 있겠냐’고 해서 ‘중립을 지키겠다’고 대답했다”면서 “그가 수시로 관리사무소에 찾아와 소리를 질러서 이제는 얼굴만 봐도 심장이 철렁 내려앉고 공황장애가 올 형편”이라고 말했다. 

이 아파트와 A소장이 소속된 C사와의 계약 기간은 오는 11월까지다. 하지만 이 아파트는 18일 새로운 업체와 4월 1일부터 위탁관리를 계약한 상태다. A소장은 “B회장이 선거관리위원회를 거치지 않고 자신의 가족 및 선관위원 1명과 입주자 방문 투표로 동의를 받은 후 계약해 절차에 하자가 있다”고 주장했다. 본보는 이에 대해 B회장의 의견을 들어보려 했으나 그는 “시간이 없다”며 응하지 않았다. 

◇사실조사 의뢰 어려움·부당간섭의 범위는?

이렇게 여러 가지로 시달리던 A소장이 구청에 부당간섭에 관한 사실조사를 의뢰했으나 구청 측은 A소장이 방문 재촉 후 10일만에 사실조사를 하러 나왔다. 공동주택관리법에는 지자체가 ‘지체 없이 조사를 마친다’고 명시돼 있다. 조사 때 A소장과 B회장, 관리직원 등은 한곳에 모여 진술했다. 

구청이 15일 A소장에게 통보한 사실조사 결과는 ‘양측의 의견이 상당 부분 대립하고 입대의 회장의 업무 간섭이 부당하다고 판단할 근거가 불충분하다’는 내용이었다. 입대의 측에는 ‘소장의 잦은 교체 및 직원의 정신적 고통 호소는 아파트 관리 업무의 차질과 입주민 등의 불편을 야기할 수 있으니 관계 규정을 준수해 달라’는 행정지도를 했다. A소장이 구청에 항의하자 구청 측은 ‘해당 내용은 갑질에 불과하다’며 ‘부당간섭이 인정되려면 위법 사항이 포함돼야 한다’고 말했다는 것. 

양천구청 주택과 공동주택관리팀 관계자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소장 교체 요구를 한다고 해서 모두 부당간섭으로 볼 수는 없다”며 “공동주택관리법 제65조 제1항 또는 제65조의 2 제3항의 행위를 할 목적으로 해고 등의 조치를 요구한 것은 아니라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사실조사가 늦었다는 의견에 대해서는 민원에 대해 상대편 의견을 받고 현장 조사 여부를 결정하기까지 시간이 필요하다담당자의 휴가와 공휴일이 껴 있어 사실상 5일 만에 사실조사를 나간 것이라고 덧붙였다.

홍경원 변호사(법무법인 산하)는 “공동주택관리법 제65조 제1항은 소장의 업무에 대한 부당 간섭 배제에 대해 위법한 행위에 한정하지 않고 ‘부당하게 간섭하는 행위’, ‘정당한 업무를 방해하는 행위’라고 규정해 부당간섭의 범위를 넓게 인정하고 있다”며 “평소에 ‘자르겠다’는 말을 수시로 했으면 협박에도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홍 변호사는 또 “부당간섭을 위법한 경우에 한정한다면 소장을 입주민 등의 갑질에서 폭넓게 보호하고자 하는 법 제정 취지에 부합하지 않는 잘못된 해석이라 사료된다”고 덧붙였다. 

공동주택관리법 제65조 제1항은 △이 법 또는 관계 법령에 위반되는 지시를 하거나 명령하는 등 부당하게 간섭하는 행위 △폭행, 협박 등 위력을 사용해 정당한 업무를 방해하는 행위 등을 부당간섭 금지행위로 규정하고 있다. 공동주택관리법 시행령 제14조 제6항은 ‘입대의는 주택관리업자가 공동주택을 관리하는 경우 주택관리업자의 직원 인사, 노무관리 등의 업무수행에 부당하게 간섭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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