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강 기 웅   사무총장
대한주택관리사협회

 

대한민국에는 두 종류의 공동주택이 있다. ‘의무관리단지’와 ‘비의무관리단지’가 그것이다.
전 국민의 70% 이상이 공동주택에 거주하고 있지만,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가 ‘의무관리’ 대상인지 아닌지 알고 있는 입주민은 별로 없다. 의무관리 아파트는 ‘공동주택관리법’이 적용되는 단지를 말한다. 공동주택관리법엔 아파트 관리에 꼭 필요한 크고 작은 조문들이 세세하게 규정돼 있는데 이 법의 가장 큰 특징은 ‘장기수선계획제도’라고 할 수 있다.
공동주택을 오랫동안 안전하고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주요 시설의 교체 및 보수 등에 관해 수립하는 장기수선계획! 이를 체계적으로 수립하고 집행하는 전문가로서 주택관리사 그리고 장기수선계획제도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지자체의 지도·감독과 처벌 등이 규정돼 있다. 의무관리 아파트가 조기에 슬럼화 하지 않고 품격과 품위를 유지하며 가치보존을 하는 이유는 바로 ‘장기수선계획제도’에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편 이런 법 규정에서 배제된 아파트를 ‘비의무관리단지’라고 부른다. 공동주택관리법은 300가구 이상 또는 승강기가 설치돼 있거나 중앙집중식 난방방식 150가구 이상인 공동주택에만 적용된다. 결국 비의무관리 아파트는 공동주택관리법에 의한 체계적이며 전문적인 관리제도가 적용되고 있지 않으며, 지자체의 지도·감독에서도 자유롭다.
이 단지들을 둘러보면 의무관리 아파트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낙후상태를 면치 못하고 있다. 관리 없이 방치된 담장은 기울어져 언제 행인을 덮칠지 모를 정도로 불안하다. 건물 내 계단은 닳고 모서리가 떨어져 노약자기 넘어지기 십상이다. 옥상과 내부배전함엔 전기선과 여러 회사의 통신케이블들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다. 특히 주민안전과 직결되는 화재경보장치는 너무 낡아 한쪽 구석에서 먼지만 뒤집어쓰고 있는 아파트가 태반이다.
평소 체계적 관리가 이뤄지지 않으니 안전사고 위험이 상존한다. 그런데 이런 소규모 아파트일수록 서민들이 거주하는 영세 단지가 대부분이다. 노인가구, 소년가장, 장시간 맞벌이 등 사회적 약자의 거주 비율이 의무관리 아파트에 비해 상대적으로 매우 높다. 실정이 이러니 단지 특성상 주요 시설의 교체 및 보수가 제대로 이뤄질리 만무하다.
주택관리사들의 단체인 대한주택관리사협회는 관리의 사각지대에 방치돼 있는 소규모 노후아파트를 찾아 정기적으로 안전점검 자원봉사 활동을 펼치고 있다. 하지만 단지 수가 너무 많고, 노후상태가 심각해 자원봉사만으론 힘이 부친다. 따라서 소규모 공동주택에 대한 정부의 정책적 관심과 제도개선이 필수적인 상황이다.
얼마 전 서울시에서 ‘맑은 아파트 만들기’의 일환으로 소규모 공동주택에 주택관리사를 배치하는 등 체계적 관리지원에 나서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그간 의무관리단지를 중심으로 펼치던 공동주택 관리정책이 소규모 공동주택으로 확장되고 있으니 환영할 일이다. 이후 모든 소규모 공동주택으로 체계적 관리서비스를 적용하는 시발점이 되기를 바란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소규모 아파트의 관리비 상승만을 산술적으로 따지며 반대하기도 한다. 하지만 안전이 먼저다. 따라서 영세 아파트 입주민의 주거안전을 위해 필요하다면 비용지원을 정부에서 정책적으로 고민할 문제지 입주민에게만 전가해서는 안 된다. 나아가 소규모 공동주택은 규모의 경제를 감안해 비상주 순회관리 및 지역단위 공동관리 등으로 입주민의 비용부담을 줄일 수 있는 제도개선을 서둘러야 한다.
공동주택관리법은 제1조에서 ‘투명하고 안전하며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게 해 국민의 주거수준 향상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규정했다. 이 법의 목적은 가구규모 및 시설과 상관없이 모든 공동주택에서 실현돼야 한다. 공동주택관리법의 적용 여부를 구분하는 의무관리단지 기준은 30여 년 전에 만들어진 것이다. 2017년에는 공동주택관리에 있어서도 1980년대를 뛰어 넘어야 한다. 이를 위해 규모와 상관없이 소규모 공동주택에서도 ‘주거수준 향상’이라는 공동주택관리법의 가치가 실현될 수 있도록 사회적 중지를 모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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