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아파트의 승강기가 고장으로 멈춰 섰다. 관리직원이 곧바로 달려가 문을 열려고 시도했지만 한뼘 정도만 열린 상태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직원은 곧바로 유지보수업체에 연락해 기사 출동을 요청, 곧바로 출발했지만 하필이면 퇴근시간이어서 길이 막혀 지체됐다.
기다리다 못한 승객이 119에 신고, 구조대원이 도착해 승객의 안위를 확인한 후 관리사무소장에게 강제 개방 여부를 물었다. 소장은 순간 고민에 빠졌다. 승객을 구조하는 게 최우선이지만 강제 개방으로 승강기가 파손될 경우 입주민의 재산 손실은 물론 쉽게 고칠 수 있는지도 확신할 수 없었다.
갇힌 승객은 신속히 구조해야 하고, 기사는 달려오는 중이고, 119구조대원은 강제개방 여부를 묻고…이런 상황에서 소장은 어떤 결단을 내려야 할까.

<편집자 주>

 

승강기에 갇힌 승객이 46분 만에 119에 구조됐다
승객의 안전을 확인해가며 승강기업체의 출동기사를 기다리던
관리사무소장은 경찰조사를 받게 됐다
관리주체의 결정권과 재량권은 어디까지일까


부산의 한 아파트 승강기에 40대 여성이 갇혔다가 약 46분 만에 구조됐다. 그런데 승객의 구조 책임에 대한 논란과 함께 관리사무소장이 경찰조사를 받게 됐다.
지난 16일 오후 7시께 부산 남구의 모 아파트 1층에서 입주민이 탄 승강기의 문이 닫히자마자 작동을 멈췄다. 바로 비상벨을 눌러 관리사무소에 갇힌 사실을 알렸으나 출동한 직원에 의해 구조되지 못하자 119에 구조 요청을 했다. 당시 관리직원은 승객을 안심시키기 위해 한 뼘 가량 열린 문을 통해 “승강기 업체 기사가 출동하는 중이니 잠시만 참고 기다려 달라”며 지속적으로 대화를 유도했다.
현장에 도착한 119구조대는 관리사무소장에게 승강기 문을 강제로 열어도 되겠느냐고 물었다.
119구조대는 “일반적으로 화재 등 긴급상황이나 승강기에 갇혀 밀폐에 따른 불안감이 있거나 위험한 상황으로 판단하면 강제 개방을 하지만, 일상적인 상태로 보이면 관리주체의 동의를 얻어 개방을 한다”고 밝혔다. 강제 개방 시 승강기의 파손으로 구상권 등을 청구받을 수 있어서다.
출동했던 한 구조대원은 “당시 상황은 문이 한 뼘 정도 열린 상태로 승객의 상태는 불안감을 보이지 않았고, 마실 물을 건네받으며 일상적인 대화가 가능해 위급상황은 아니라는 판단에서 강제 개방에 대해 관리주체의 동의 여부를 물었다”고 말했다. “강제 개방 시 승강기가 파손될 수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승강기에 갇힌 승객은 40여 분이 경과하면서 “손발이 저려온다”며 고통을 호소했고, 소식을 듣고 달려온 남편도 “빨리 구조해 달라”고 요청해 결국 문을 강제 개방하고 승객을 구조했다.
그런데 에어포켓이란 장비를 통해 강제로 열린 문은 별다른 손상을 입지 않았다. 또한 뒤이어 현장에 도착한 유지보수업체 기사가 곧바로 정비해 정상 가동할 수 있게 됐다.
구조 후 남편은 112에 “아내가 엘리베이터에 갇혔는데 관리사무소에서 강제개방을 못하게 막았다”는 취지로 신고해 경찰조사를 받게 됐다. 혐의는 업무상 과실치상.
관리사무소장 A씨는 “사고를 당한 입주민에게 깊은 위로와 유감의 뜻을 전한다”며 “강제개방은 곧 승강기 파손을 의미하는 줄 알았다. 119구조대원이 손상 없이 쉽게 열 수 있다고 말해줬으면 즉시 강제개방에 동의했을 것”이라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그는 또 “승강기업체 기사가 곧 현장에 도착한다는 연락이 왔고, 강제개방 시 기기 오작동으로 인한 추가사고의 위험이 있어 상황 판단이 혼란스러웠다”면서 “갇힌 승객에게 곧 전문기사가 도착할 것이라 전하고, 조금만 기다리면 더 큰 일 없이 마무리될 것이라 생각했는데 구조를 막은 것처럼 확대돼 서글프다”고 토로했다.
한편 다른 아파트에서 근무하는 B씨는 “갑작스런 갇힘사고로 충격받았을 입주민과 가족에게 심심한 위로의 말을 전한다”며 “이번 사고는 승강기업체-119구조대-관리사무소 등의 의사소통 미흡과 총체적 이해 부족으로 빚어진 안타까운 사고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승강기업체는 출동기사의 위치와 교통상황에 따른 예상 도착시간을 정확히 알려줘야 했고, 119구조대는 물적 피해를 최소화하면서도 구조가 가능하다는 점을 제대로 고지하지 못한 부분이 있으며, 관리주체는 어떤 경우에도 입주민 안전을 최우선해서 신속하게 대처했어야 했다”며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관리현장의 다른 근무자들 역시 “이와 유사한 사고가 재발하지 않도록 관리주체의 재량권 등에 관해 법적,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또한 일부 언론의 ‘아파트 승강기에 여성 갇혔는데 관리소장 구조막아’ ‘승강기 파손우려 119구조 막은 관리소장’ ‘승강기 부서지니 사람은 나중에 구해라’ 등의 자극적 제목을 뽑아 소장을 일방적으로 매도하는 보도행태에 대해서도 깊이 우려하는 표정이었다.
대한주택관리사협회(회장 최창식)는 지난 21일 김학엽 법제위원장(대구시회장)과 임한수 법제팀장을 긴급 파견해 변호사 선임 등 법률지원에 나섰다.
대주관 김홍환 부산시회장은 “이번 사건에 대한 언론의 왜곡보도를 바로 잡기 위해 신속대응에 나섰지만 이미 보도된 것을 바로잡는데 한계가 있었다”며 “승강기 사고조치 관련 미비한 법적·제도적 현실과 아파트의 사소한 문제나 시설물 파손에도 책임을 떠안아야만 하는 관리주체에 대한 책임확대의 불합리성은 반드시 고쳐야 할 폐단”이라고 말하고 “본회와 함께 개선책 마련을 위해 발벗고 나서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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