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채 영  여행객원기자
여행비밀노트(http://chaey.me)

 

서울 종로 한복판이라고는 믿기 힘들 만큼 낡은 동네가 있다. 주변의 다른 동네들이 도시개발사업을 통해
현대적인 모습으로 바뀌는 동안에도 이곳의 시계는 멈춰있었다. 개발계획이 거듭 무산된 탓이다. 어깨를 맞대고
걸을 수 있는 골목이 사라진 요즘, 오래되고 낡아 외면받던 익선동은 서울 어느 곳보다도 매력적인 공간으로 떠올랐다.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한옥마을

일제의 국권침탈(한일합병) 이후 일본이 기획한 근대적 도시계획에 따라 경성에는 근대식 건물이 속속 들어섰고 일본인의 이주를 통해 경성의 점유를 견고히 하고자 했다. 경성으로 이주한 대다수의 일본인은 청계천 남쪽에 거주했다. 1910년대 중반 이후 청계천 남쪽의 주거지역이 포화상태에 이르자 총독부는 청계천 북쪽으로 이주 지역을 늘려 일본인의 세력을 확장하기로 했다.
이에 조선의 건설업자 정세권(1888~1965)은 “사람 수가 힘이다. 일본인들이 종로에 발붙이지 못하게 해야 한다”며 1920년 우리나라 최초의 부동산 개발 회사 ‘건양사’를 세우고 기존의 넓은 토지와 택지를 쪼개 소규모 개량 한옥을 대량 공급함으로써 일본에 의해 조선 고유의 주거 형태를 잃어버리는 것을 막았다. 그는 북촌, 익선동, 봉익동, 성북동, 혜화동, 창신동, 서대문, 왕십리 등 경성 전역에 한옥 대단지를 건설했는데, 익선동은 그중 가장 처음으로 만들어진 한옥단지다.

 

변화하는 익선동

익선동의 ‘익선(益善)’은 ‘더욱 착하고 잘한다’는 뜻이다. 마을의 원래 이름인 ‘익동’과 한성부 ‘정선방(貞善坊, 조선시대 한성부 중부 8방 중의 하나)’에서 한 글자씩 따서 지은 이름이다.
지하철 종로3가역 4번 출구로 나오면 익선동으로 가는 골목이 나온다. 이름마저 낯설 정도로 잊혀가던 익선동. 좁은 골목과 남루한 개량 한옥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이곳은 화려한 도심에서 분리된 하나의 섬과 같았다.
지금의 익선동에는 과거와 현재가 공존한다. 개성 강한 젊은 사업가와 예술가들이 비교적 임대료가 싼 익선동에 둥지를 틀면서 시작된 변화다. 낡은 한옥을 개조해 만든 카페와 식당, 상점과 작업실이 속속 들어섰다. 이들에게 옛것은 새로운 것이었고 ‘낡음’은 하나의 ‘멋’이었다.

 흔적 가득한 골목 산책

볕이 좋은 날 익선동의 좁고 구불구불한 골목길을 걷다 보면 시원하게 쭉 뻗은 대로에는 없는 감성이 느껴진다.
좁은 골목 끝 모퉁이를 돌았을 때 어떤 매력적인 가게가 숨어있을지 상상하며 다니는 재미가 쏠쏠하다. 골목에는 허물어진 담장을 그대로 둔 채 안쪽 벽에 창을 내어 안을 엿볼 수 있게 한 가맥집 ‘거북이 슈퍼’, 모르는 사람은 쉽게 찾을 수 없도록 간판마저 없앤 ‘간판 없는 가게’, 좁은 한옥 마당에 테이블을 놓아 야외 레스토랑 느낌을 낸 ‘르 불란서’ 등 익선동에서 만나는 가게는 어느 하나도 평범하지 않다.
더할 나위 없이 세련된 가게와 수십 년을 이어온 노포가 어우러진 익선동.
최근 한 예능프로그램에 소개돼 더욱 유명해진 카페 겸 펍 ‘식물’은 옛것과 새것이 어우러진 익선동을 가장 잘 보여주는 곳이다. 사진가 루이스 박이 운영하는 이곳은 버려진 한옥 3채를 하나로 개조한 곳으로 이곳에 살았던 사람들의 흔적을 그대로 남겨둬 더욱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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