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본지에 걸려온 전화 중 구독과 광고상담을 제외하곤 ‘노원구 경리직원과 관리사무소장 사망’에 관한 문의가 가장 많았다.
그도 그럴 것이 한 아파트 단지에서 함께 근무하던 소장과 경리직원이 며칠 새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경우가 일찍이 없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공동주택 역사에 전대미문의 사건으로 남을 것으로 보인다.
내용은 알려진 바와 같다. 이 아파트는 노후 상수도관 교체공사를 진행 중이었다. 계약금은 문제없이 지급됐으나, 중도금부터 꼬이기 시작했다. 경리직원이 지급을 차일피일 미루자 관리사무소장이 “빨리 업체에 입금하라”며 재촉했고, 경리직원은 연말을 며칠 앞둔 12월 26일, 소장에게 ‘죄송하다’는 문자메시지를 남기고 자신의 집에서 목숨을 끊었다.
이후 입주민들이 관리사무소에 찾아가 장기수선충당금 통장을 확인해보니 7억원 이상 남아있어야 할 금액이 불과 300여 만원 남짓 남아있었다. 이제 비난과 책임의 화살은 관리사무소장에게로 향했다. “함께 횡령에 가담한 것 아니냐”는 성토가 이어졌다. 그는 몰랐다고 말했지만 입주민들은 믿지 않았다. “설사 그 말이 사실이더라도 소장이 피해금액을 변상해야 한다”는 주장이 이어지자 그도 결국 근무하는 아파트 지하실에서 극단적 선택을 하고 말았다. 경리직원 사망 나흘 만이었다.
이 일이 바깥에 알려지면서 여러 언론사 기자들이 몰려드는 등 초미의 관심사로 급부상했으나, 당사자들이 세상을 떠난 데다 아파트가 외부인의 출입을 통제 중이어서 더 이상의 취재가 불가능하고, 결국 경찰 수사결과가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됐다.
공동주택 관리사무소장과 경비원 등의 자살사건은 가끔 일어나는 한국만의 고질적인 비극이다. 대부분은 입주민이나 주민대표의 폭언, 폭행, 비인간적 대우 등 악랄한 갑질을 견디다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거액의 장충금 횡령과 관련된 것이어서 해당 단지 입주민뿐만 아니라 많은 관리종사자들이 안타까운 심정으로 사태추이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행동심리전문가에 따르면 횡령사고엔 반드시 사전 매개요인이 존재한다. 대표적 요인은 경제적 궁핍과 고통, 주식 등 투자손실, 도박, 빚, 불륜 등 비정상적 애정관계, 약물중독 등이다. 책임자가 직원을 선발하고 관리할 때, 기본업무 외에 경제적 심리적 상태까지도 세심하게 살펴봐야 하는 이유다. 이번 사건의 진상이 밝혀지면 경리직원이 어떤 형편에 놓여 있었는지 드러날 것이다.
이와 별개로 입주민들은 횡령이 장기간에 걸쳐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들키지 않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소장에게도 이 말이 가장 뼈아프게 다가와 극심한 중압감을 느꼈을 것이다. 관리책임자로서 돌이킬 수없는 과오를 범한 것이다.
대한주택관리사협회에 따르면 그는 이 단지에서 자치관리로 9년 여간 장기근속했으며, 협회엔 가입하지 않은 비회원 신분이었다. 대주관은 그럼에도 긴급지원팀을 파견해 사태파악에 나서고, 피해규모를 줄이기 위해 아파트 및 노원구청과 협조체계를 구축하며, 후임 관리사무소장을 추천하는 등 수습에 나섰다. 입주민들의 불안을 신속하게 다독이고 불신을 최소화하는 데 다소나마 힘이 됐을 것으로 보인다.
다수의 전문가들이 가장 이상적인 형태의 공동주택 관리모델로 ‘자치관리’를 꼽는다. 생활공동체의 자발적 참여와 주민자율이라는 대의명분에 가장 부합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상황에선 이상과 현실이 일치하기 어렵다. 오랜 기간 자치관리 체제에 안주하다 보면 교육과 정보 등에 뒤처지고, 최신 규정을 몰라 본의 아니게 법을 어길 수 있다. 개인의 문제를 떠나 구조적으로 나태해질 위험과 ‘나는 늘 잘하고 있다’는 자기도취에 빠질 수도 있다.
의료인(의사, 조산사, 간호사 등)협회나 변호사협회 등은 회원가입이 의무화돼 있을 뿐만 아니라 자격정지나 등록거부 같은 강력한 권위와 지도력으로 회원들의 나태와 도덕적 해이를 미연에 방지하고 있다. 주택관리사에게도 이런 제도가 필요하다. 국민 다수의 안전과 재산을 지키는 주택관리사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자치관리뿐만 아니라 모든 아파트에 안정적 긴장감을 불어넣고 선진관리를 정착시키기 위해선 대한주택관리사협회 회원가입을 의무화해 각종 교육과 정보의 습득을 강제할 필요가 있다.
직업윤리는 개인의 자유의지가 아니라 체계적 시스템에 의해 지키고 유지돼야 한다.

저작권자 © 한국아파트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